좋아하는 사람은 다수일 수 있다.
아마도 이 차이가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보다 덜 특별하다는 오해의 원천일 수 있겠다.
내가 ‘좋다‘는 마음을 귀하게 보는 데는
이 감정이 가진
실시간성과 일상적임에 있다.
우리가 ‘좋다‘는 말을 언제 하는지 떠올려보면 실시간성이라는 말이 무언지 이해가 갈것이다. 친구랑 공원에 앉아 기분 좋은 바람을 맞을 때, 마음에 쏙 드는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다 문득 뱉게 되는 말.
‘좋다!‘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주는 안정성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에 부등호를 붙일 생각은없다. 이 둘은 맞닿아 있는 듯 완벽하게 다른 세계를 빚어내는 감정이며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기대‘의 반대 의미는 무얼까.
‘오해‘, ‘편견‘쯤되겠다. 둘 다 사적인 시각에서 비롯되지만, 기대에는 애정이 그 시작점에 관여를 하고 오해와 편견에는 그에 반대되는 감정이 관여했다는 차이만 있다.
때로 기대는 실망을 낳고 오해나 편견이 호감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오래된 관계는 이 두 감정이 교차 반복되다가 찾은 평균점 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높은 확률로 당신을 실망시킬 테지만 우리 평균점을 찾아가보지 않겠냐는 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우리, 마음껏 실망하자. 그리고 자유롭게 도란거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