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대답을 들어도, 나의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무슨 백성들의 뜻을 말하는 거지? 우리 같은 백성들? 아니면 우리 하인들 같은 백성들? 둘째언니가 중얼거렸다. "황제가 안 계시다니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2천 년이 넘도록 항상 황제가 계셨잖아요." "세상은 바뀔 수 있단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옥팔찌를 가지고 놀고 있는 남동생을 힐끗 보았다. "우리 아들은 황제가 없는 나라에서 자라게 되겠구나." 아버지는 감회 어린 목소리로 읊조리며 팔을 뻗어 남동생의 턱 밑을 간질였다. 나는 아버지 말씀이 맞기를 원했다. 세상이 변한다면, 어쩌면 여자아이들도 더이상 전족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나는 혁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무조건 지지하고 싶었다. 혁명에 대한 흥분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전족에 대해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제임스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둘째언니와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했다. 제임스는 어떤 편견도 없이 동정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제임스는 어쩌다가 위너 씨 가족의 보모가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비록 제임스를 알게 된 지 2주일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제임스에게 신뢰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 사연을 전부 아는 사람은 길버슨 선생님뿐이었다. 워너 씨부부조차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 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에 대해서 제임스 추에게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심지어 파혼당한 일까지 이야기했다. "이게 제 이야기예요. 이제 제가 왜 미국으로 가는 배를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셨겠지요." 나는 말을 맺었다. 제임스는 한동안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당신처럼 용감한 사람은 처음 만나 봅니다." 처음에 나는 제임스가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194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혁명적이거나 뭐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화뮬란처럼 여전사도 아니고요." "당신은 혁명가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싸운 싸움을 존경합니다. 인습과의 싸움을 말이죠." 내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인습에 맞서 싸운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않으시나요?" 큰아버지는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옛것을 지킬 뿐만 아니라, 새것을 알기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제임스가 말했다.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전통도 있지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확고하던지, 나는 왠지 제임스의 인생에도 뭔가 그런 일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쨌든 제임스가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이 기뺐다. 나는 제임스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에 대해서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제 당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당신은 어쩌다가 미국이어 1OF
한웨이가 소리쳤다. "적어도 난징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 않소! 그런데 당신은 미국에 그냥 남았소! 당신이 그 동안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난 견딜 수가 없단 말이오!" 한웨이의 말이 맞았다. 나는 무척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차이나타운에 사는 어떤 여자들은 전족을 하고 부유한사업가와 결혼해서 이층 방 안에 갇힌 채 편안하게 살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면 난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인생을 선택했다. 제임스와 식당을 시작했을 때, 처음 2 년 동안은 그야말로 허리가 휘도록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제임스가 힘들것이라고 미리 경고해 주었지만,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고단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은 최근 들어서였다. 제임스와 나는 도와줄 사람을 쓸 만한 여유가 생겼고, 이따금 동물원에 가거나 페리호를 타고 이스트 베이로 놀러 갈 틈도 났다. 나는 심지어 한가롭게 자리에 앉아 손님들과 지나간시절에 대해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한웨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일에 시달린 내 손을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내 손끝은 다시는 가늘고 섬세해지
지 않을 것이다. 내 손과 대조되게 한웨이의 손은 여전히곱고 부드러웠다. 날마다 수북이 쌓인 접시를 닦기는커녕, 자기 양말 한 짝 빨아 본 적이 없는 그런 손이었다. 문득 이제 우리 가족들과 다시 연락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세히알려주고 싶었다. "한웨이, 우리 어머니께 내 편지 좀 전해 줄래요? 그리고 이 식당에 대해서도 어머니께 말씀드려 주겠어요?" "나는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이 자랑스러워요. 왜냐하면나는 내 두 발로 씩씩하게 서서, 내 남편이 이 식당을 성공시키는 걸 도와주었거든요." 나는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버지라면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내 커다란 발로 씩씩하게 서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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