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각을 들려줘
생활속 제국주의는 가스라이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서양의 강대국을 먼저 발전한 나라라는 뜻에서 선진국, 그 밖의 나라들을 후진국이라고 표현한다.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와 강점이 있을 텐데 이런 표현은 서양의강대국처럼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제국주의는 문화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고, 이건 과거의 제국주의보다 더 교묘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타인이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문제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저항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돌 문화에서도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돌이 미국에 진출해 미국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면 국내 음원차트 1위를 한 것보다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는다. 이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값진 일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국내에서인기를 얻은 아이돌도 해외 진출을 하면 꼭 영어 이름을 짓고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K-pop이 정말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라면아이돌이 해외 진출을 하더라도 우리말로 된 이름과 노랫말을 유지하고 그것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문화가 글로벌 문화라는 이름으로일상 속에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 반 친구들은졸업 사진을 어떤 콘셉트로 찍을지 고민이 많다. 단연 하이틴, 해리포터, 디즈니 공주가 대세다. 여기서 하이틴은 미국 10대들의패션이고, 해리포터는 영국 영화이며, 디즈니는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예쁘다고 좋아하며 따라하려고한다. 또 10대들은 아이폰을 쓰지 않으면 촌스럽고 뒤처진다고여긴다. 실제로 10~20대가 애플사의 기기를 사용하는 비율이높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처럼 미국과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는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건 아닐까?
한국 사회가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에서 제국주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약소국 출신의 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라고 부르면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 외국에서 온 노동자인 백인 영어 강사는 이주노동자라고부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또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사람이 당연히 영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제국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조선을 서양처럼 만들고 싶었던 엘리트와 점점 악화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민중이 추구하는 세상은 비슷했다. 하지만그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과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에 대립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대립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수 있다고 본다. 정당이 하나밖에 없으면 독재국가인 것처럼민중과 엘리트도 항상 협력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 민중과 엘리트는 협력적인 관계가 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될 수도 없었다. 엘리트는 소수인 데다 경제적으로 유복해서 민중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민중을 멋대로 추측하여 판단한다. 오늘날에도 사회 지도층은 완전히 다른 세대인 M세대와 Z세대를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MZ세대라고 이름 붙여 부른다. 계급사회의 문제는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사이에 솔직한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솔직하고 심도 있는대화를 나누었다면 민중들이 까닭도 모르고 반대했을까? 가장중요한 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엘리트라면 민중의 지지를 얻어 내야 한다. 급진개화파는 특권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추구했다지만 민중을 교육 대상으로 보았다. 정말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민중과 엘리트가 협력할 수 있도록 동등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민중을무식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민중의 의견이라고 색안경 끼고 보지 않으며, 민중의 의견이 합리적이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들이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왜 의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민중이 무기를 들기 전에 국가의 위기를 누가 막을 수 있었는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권력을잡고 있던 사회 지도층이 일본과 맞서 싸울 의사를 보였더라면심각성을 느낀 민중이 그들과 협력하며 일제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을 것 같다. 나라가 식민지가 되기 직전에도 그저 개인의 지위와 재산을 보전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태도는 비판받아마땅하다.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이기적인 행동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의병의 교훈이다.
의병의 교훈은 의병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배층이 비겁한 모습을 보였기에 의병들은 더욱 빛난다. 하지만 이런점만 기억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자신보다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어느 순간 당연시되어 바꿀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배층이 자신들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의병의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사회 지도층은 큰 힘을 누리고 있는 만큼 위기에도 솔선수범의 자세를 가지고 민중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사회 지도층이 권력과 돈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이익을 좇는 행태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지난 역사와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배우는 것이 역사 교육에서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학교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하고 정해진 교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을 통제한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통제가 없다면 몇백 명이함께하는 학교생활이 가능할까? 그리고 학교가 없다면 우리가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의 일과는 습관의 힘을 길러 준다.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는 것은 시간표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에맞춰서 생활하는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학교가 성적을 이용해 학생들을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교는 학생을 성적으로 평가한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선생님과친구들에게 좋은 학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이 성장한 학생일까?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도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 나름대로 성장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은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한다면 학생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정체성을 형성할 성장기에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하며 스스로를깎아내리는 것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학교에서 높은 시험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학교가성적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개인의 소질이 계발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해마다 희망하는 직업을 써내야 한다. 20대 때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하면 안 되는 것일까? 또 우리는 교칙으로 통제받는다. 사복을 금지하는 이유가 학생 간에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성적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괜찮은 걸까? 학생들이 사회의 흐름을 강제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학교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나는 유관순이 3·1운동을 대표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는 어른이 아닌 어린 여학생으로서 만세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 당시 잔인무도한 일본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큰 용기가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남녀차별이 지금보다 심하던 시절에 여학생이 독립운동을 이끈 것은 대표적으로 기억할 만한 일이다. 3·1운동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억눌렸던 민중이 스스로 독립 의지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외되어 있던 많은 이가 동참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어느 시대나 소외되어 관심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의지와 긍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민중들의 숨어 있는 힘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촛불집회와 같은 불꽃을 밝힌 게 아닐까? 유관순은 이런 소외된 민중의 대표 자격이 있다.
유관순이 학생이었음에도 3·1운동을 앞장서 이끌고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굽히지 않은 것은 무척 훌륭하다. 하지만 한 인물이 3·1운동 자체를 대표한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3·1운동을 대표하는 것은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고 일제의 탄압에 대해 ‘목소리를 낸 조선인 모두라고 생각한다. 일제에 저항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많은 사람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위험을 무릅쓰고 만세 운동을 했다. 그분들이 원했던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위해 행동으로 나선 것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3·1운동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인 것은 맞지만 3·1운동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없다. 3·1운동은 우리 민족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 낸 것인데, 유관순만 기억한다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보이지 않게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을 어떤 인물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시험 때 외우기 쉬운 것 외에 다른 좋은 점은 없는 것 같다. 유관순 열사도 3·1운동에 대한 기억이 축소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이 독립을 위해 힘썼다는 사실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에 관한 법을 바꿔야 한다. 정부에서는 지금도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훈장을 준다는 뉴스를 봤다. 당연한일이지만 일찍 인정된 독립유공자에 비해 경제적 혜택을 덜 받는 셈이니 형평성이 부족한 것 같다. 독립군 후손들이 증거가 부족해서 뒤늦게 인정받는다면 손자 이후의 후손이라고 해도 지나간 시간을 고려하여 보상금, 생활 지원, 교육 지원 등 혜택을 모두 주는 것이 독립군에게 늦게라도 감사의 의미를 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10대들 사이에는 조선족 비하가 심각하다. 조선족이라는단어를 비속어로 사용하는 친구도 많다. 사실 나도 왜 그들이 중국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은 광복 후 귀국한 줄 알았는데 중국에 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지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생계가 어렵다는 기사가 나오면 사람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족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모순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선진국이 된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우리나라 경제력이 세계 10위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국가를 위해 힘쓴 분들의 후손에 대해 예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식에게만, 그것도 남녀를 따져서 혜택을 주었다는 게 너무나 황당하다. 재정적 지원이 힘들다면 그분들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훈장이라도 드려야 하며독립군이 기억될 수 있도록 후손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기록해책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독립군이 자신들의 희생과헌신에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일제강점기는 권력이 사람을 점령한 시대 같다. 학교 칠판에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체포한 것을 보면 권력에 조금이라도 반발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탄압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일본인 중에도 사회적 약자들은 조선에 취업하러 오기도 했고 조선인 중 권력에 가까운 사람은 부를 쌓고 백화점, 스키장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며 지냈다.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가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가까운지 아닌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권력이 사람을 지배해선 안 되며 사람이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일제강점기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는 정의가 흔들린 시대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에 넘긴 사람 중에는 조선인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식민 지배 협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는걸 보여 준다. 그리고 조코 요네타로는 일본인인데도 조선을 도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이런 걸 보면 일제강점기는 일본인을 위한 시대도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에서 배울수 있는 교훈은 일본에 대한 적대심을 키우는 게 아니라 정의를흔드는 위험한 가치관에 대한 적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는 모순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흔히 일제강점기를일본인이 한국인을 점령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일제를 도와권력을 누리며 살아간 사람도 있고,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인을 도왔던 사람도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처럼 조선인을 성의 도구처럼 생각한 사람도 있다. 상반되는 일들이 많아서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통해 일본인을 무조건 나쁘게만봐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나쁜 것은 일본이라는 국적이 아니라 시대를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기심인 것 같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당시 사람들에게 8월 15일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컸을 것같다. 물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세우는 일은 상상하지못했던 데다 완전한 회복도 아니다. 그래도 35년이라는 기나긴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간의 독립운동이 결실을맺은 것이기에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이는 정도로는 회복이 된 것같다.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분단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바랐던 독립 후의 세상은 이렇게 분단된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더 큰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38도선을기준으로 분단되면서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한국전쟁으로 동족간에 총을 겨둬야 하는 날이 왔으니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은 없는것 같다.
너의 생각을 돌려줘
당시 사람들에게 8월 15일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컸을 것같다. 물론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부를 세우는 일은 상상하지못했던 데다 완전한 회복도 아니다. 그래도 35년이라는 기나긴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간의 독립운동이 결실을맺은 것이기에 암흑 속에서 빛이 보이는 정도로는 회복이 된 것같다.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 생각된다.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한반도가 분단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바랐던 독립 후의 세상은 이렇게 분단된 나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더 큰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38도선을기준으로 분단되면서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한국전쟁으로 동족간에 총을 겨둬야 하는 날이 왔으니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은 없는것 같다.
다른 빛을 기다리는 또 다른 어둠이 아니었을까? 일제로부터독립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오늘날 우리에게도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독립운동가들이 서로대립하고 강대국이 한반도를 통치하겠다고 하는 일이 일어나지금까지도 남과 북은 분단된 상태다. 광복은 긍정적 사건이기보다는 연속된 갈등의 시작처럼 보인다. 그래서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광복 무렵보다 더 발전한 것처럼 통일이라는 또 다른 빛을 회복하는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의 생각을 들려줘
우리가 한국전쟁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다. 강자(지도자들)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약자(민간인들이 이유 없는 폭행과 학살 등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피해를 받는 민간인들은 정작 자신들이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강자들의 결정으로 약자의 머리에 총이 겨누어지는 어이없는 현실과참혹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약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있다.
한국전쟁은 두 정부의 정치적 자존심 싸움이었다. 고위층의 자존심이 민간인과 군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피란길에 오르고 가족들과생이별을 해야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민간인이라는 사실과 모두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과 민간인 학살의 비극을 보며 폭력을 선택한 과거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 모두의목적이었던 통일을 더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뤄 낼 수는 없었을까? 예를 들어, 모둠활동 때 의견이 달라 충돌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모둠원은 ‘좋은 성과를 낸다‘라는 목적은 같다. 모둠활동 중에 과거 지도자들이 전쟁과 폭력을 택해 피해만 남겼던 것을 기억한다면, 서로에 대한 공격은 성과보다는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화와 협의를 통해 평화롭고 지혜로운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시민들에게 권력이 분배되어 독재가불가능한 구조가 확실하게 갖춰지고, 시민들이 권력자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라다. 독재자가 등장해 집단체조 같은비민주적인 행사를 진행할 때, 비판의식이 없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시민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창구다. 시민이 단체를 구성하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장이 충분하고 그 안에서 개개인이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또한 그것을 정부가 귀 기울여 듣고 수용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민주공화국다운 나라가 될 것 같다.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국민을 정치에서 소외시키지 않는 나라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에도불구하고 이승만처럼 국가 권력을 이용해 반대 세력을 폭력으로억압하고 선거를 조작한다면 민주공화국은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로 권력을 갖게 된 지도자는돈과 명예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
민주공화국다운 나라는 모든 국민이 같은 무게의 ‘돌‘을 쥐고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민주공화국 국민의 주권이 바로 ‘돌‘이다. 주권을 ‘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것이 단지 권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책임감, 의무감, 정치에대한 관심 등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정치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정치는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장을 읽으며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승만과 같은 독재자를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표는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이다.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자신의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한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가난하든 부유하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일에 만족하려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더불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이 보장되어야한다. 하지만 1960~1970년대 노동자 대다수는 잔혹한 노동 현실 때문에 힘겨워했다.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아닌 그 시대의 노동자들이 이뤄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살아 보세‘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당시 경제 규모 변화를 그래프나 표로 본다면 한국이 잘살게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민의 워라밸은 무너졌고 평균적인 삶의 질 또한 훨씬 떨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영광과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해도 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이런 사회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너의 생각을 들려줘
가난하든 부유하든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내 일에 만족하려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더불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이 보장되어야한다. 하지만 1960~1970년대 노동자 대다수는 잔혹한 노동 현실 때문에 힘겨워했다.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발전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박정희가 아닌 그 시대의 노동자들이 이뤄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살아 보세‘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당시 경제 규모 변화를 그래프나 표로 본다면 한국이 잘살게 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수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민의 워라밸은 무너졌고 평균적인 삶의 질 또한 훨씬 떨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노동자의 육체와 정신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영광과 혜택에서 배제되었다.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해도 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이런 사회가 ‘발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은 애초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부는 다음 선거에서 또 당선되기 위해 경제개발을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경제발전의 수치만 신경 쓰고 국민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국민의 삶의 질을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제발전의 목적도 국민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제개발 정책 아래에서 노동자의 삶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하루하루 겨우 살아갈 정도의 낮은 임금을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을 해야 했다. 국민의 행복을이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제 규모는 커졌으나 발전했다고보기는 힘든 것 같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채식주의자와 성소수자가 배제되고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굳이채식주의자 앞에서 고기 이야기를 꺼내거나 비건 음식을 조롱하는 일이 빈번하다. 또 동성애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더럽다고 혐오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않아 시장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봤다. 이런 것을 보면 그들은 ‘효율‘과 ‘정상성‘이라는 이름아래 차별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이 떠올랐다.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군인으로복무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관공서 등에서 대신 복무하게하는 제도다. 우리 학교에도 사회복무요원 선생님이 계셔서 궁금한 마음에 검색해 본 적이 있는데, 국제노동기구에서 사회복무요원을 강제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 역시 국민을 국가에 동원하는 ‘신속‘과 ‘효율‘의 유산인 것 같다. 사회복무요원이 된 사람들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것인데,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든 우리나라가 그런 사람들까지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장애 이해 교육‘ 시간에 한국의 지체장애인이 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영상을 보았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휠체어가 다니기 힘들 만큼 좁아 사고가 날 뻔했고, 정류장에 도착한 후에는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가 없어 두 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야했다. 영상을 보며 내가 왜 그동안 길에서, 버스에서 휠체어를 탄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일은 장애인에게 너무 힘들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일이었던 것이다. 또 장애인의 탑승으로 출발이 지연된다며 장애인에게 눈치를 주거나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 차별받으며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사회는 바뀌지 않을까? 장애인 차별에대한 인식 개선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포용의 손길을 건넬실질적인 방법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의 생각을 들려줘
학교에서 토론할 기회가 많아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학기마다 있는 선거인데, 사실 선거가끝나면 전교 회장이나 학급 회장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학생들 대다수도 물론 관심이 없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대통령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힘쓴다는 사실을 배웠다. 학교에서부터 전교 회장, 학급 회장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공약은 지키는지 점검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임원들은 더 잘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일반학생들은 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일상 속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야 하는 곳은 학교다. 학교는 그저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작은 사회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토대로 사회에 진출해 살아간다. 따라서 학교에 민주주의가 잘 자리 잡는다면 그것이 점차 사회로 확장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고 학생이 교칙을 직접 만들 수 있게 하는 등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직접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을 뽑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교육 정책에 학생의 의사가 잘 반영될 수 있고,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도 학생과 교육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정책을결정할 것 같다. 240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 2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한권리를 갖는다는 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로는누구나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는 불평등한 부분이여전히 많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는 현관에서부터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 미세먼지 방지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학교 다니는 내내 듣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 교무실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누구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만약 학생이 이걸 지적한다면 버릇없는 학생이 될 것이다. 교사와 학생사이의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제기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분위기를 만든다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불평등을 연하게 여기지 않고 용기내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영향을 받아 더욱 민주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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