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기어이 상추를 한 장 한 장 정성껏 씻어 연우에게 먹이려 애썼다.
"이것 봐, 언니, 달팽이야. 너무 귀엽지?"
지민의 손바닥에 놓인 달팽이는 작은 모래 알갱이 같았다. 화분에 놓아두니 물컹한 몸을 내밀고 느릿느릿 기어가기 시작했다. 달팽이를 키우겠다는 지민에게 강아지를 사 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낮 동안 혼자 있는 지민이 외로울 거란 생각을 못 했다.
"강아지는 껴안을 수도 있고, 반응도 있으니까 덜 심심하지 않을까? 너처럼 하얗고 작은 아기 푸들로 사자".
"난 달팽이가 좋아. 낯선 이가 나타나면 집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것도, 언제든 숨기 위해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너무나 연약해서 다치기 쉬운 그 몸도, 상처받을까 봐 숨는 건데모두들 딱딱한 집만 보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언니랑 닮았잖아. 그래서 달팽이가 좋아."
달팽이 따위와는 닮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민의 들뜬 기분을망치고 싶지 않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달팽이(Snail)와 뱀(Snake)의 어원은 같다.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꾀던 간교한 이미지가 떠올라 마땅찮았다. 꿈틀대는 모양도 소름끼치게 징그럽고 비겁하게 항상 숨을 곳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싫었다. 아니,
보다는 이브가 더 증오스러웠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연우의 삶은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결국 인간이 문제였다.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학교 옮기면 ‘태워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담임이나 힘든 업무는 무조건 새로 발령받은 교사에게 떠넘기는 거야. 일종의 텃세지 
바뀐 환경에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일이 몰아치니 거의 학교 옮긴 첫해는 죽어지내야 해, 그러니까 아이 있는 교사들은 발령받은 첫해 1학기를 휴직하는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기간제 선생님한테는 주요 업무를 맡기지 않으니까 꼼수를 쓰는 거지. 매년 겪는 일인데, 생각할 때마다 우스워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배려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학생들에게는 타인을 배려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이기적으로 구는 거 우습지 않나? 그런 관례를 고려한다고 해도 서연우 선생한테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업무가 몰렸어. 
아무런 상관없는 내가 이렇게 억울하고 화가나는데 정작 본인은 어떻게 견뎠을까?
내가 슬쩍 서연우 선생이랑 친했다는 김유미라는 생물 선생한테 물어봤는데 교감이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내신(발령신청) 쓴 거라고 하더라. 
동생이 많이 아픈데 한국대 병원이 바로 앞이잖아. 언제라도 병원으로 뛰어갈 수 있도록 병원에서 가까운 학교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동생 병원비 때문에 휴직도 못했다고 하더라. 
성적관리담당인데 작년 1학기 기말 때는 세 과목이나 문제 오류가 나서 재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나봐 게다가 담임학급원수도 다른 반은 22명인데 34명이나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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