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바실리카Basilica 식 교회의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중앙 돔dome (반구형 지붕이나 천장) 형식을 취한다.
물론 돔 형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판테온Pantheon처럼 형틀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부어 굳히고 그 위에 벽돌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4개의 볼트vault(아치에서 발달된 반원형 천장 · 지붕을이루는 곡면 구조체)를 교각처럼 세우고 그 위에 경량 벽돌을 쌓아올린다. 또한 돔을 정사각형의 틀로 받치고, 그들은 아치와 아치의 틈을 메우는 펜던티브pendentive (오목한 삼각형 모양으로 두 벽면의 모서리에서 돔의 기초면에 이어지는 구조가 이어서 받아내며 완성된다.

중앙의 기둥이 없는 높이 50미터가 넘는 거대한 돔은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내부 공간과 돔 하부에 뚫려 있는 무수한 창으로 빛이들어와 중앙의 돔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프로코피우스는 이 돔을 "경탄과 전율이 동시에 이는 역작으로 이 돔은 석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사슬에 매달려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고 표현한다.

전통을 거부한 아버지가 어느 순간 다시 거부해야 할 낡은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모순은 인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갈등이다. 영화에서 극적 재미를 위해 악역으로 설정된 코치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하고 자유시간을 준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간식도 못 먹고 여가도 없이 하루 종일 훈련에만 몰입했던 기타는 드라마를 보거나 쇼핑을 하거나 외모를 꾸미며 말하자면 세련된 현대인의 일상을 즐기게 된다.

서로 다른 2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듯 고향 마을과 도시의 일상적 경험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기타가 겪는 혼란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20세기 전후 근대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국가와 도시가 겪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문화는 낡은 것으로 여겨지고 버려졌다. 
우리가 한옥에서 나와 한복을 벗고 양복을 입고 입식생활을 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했듯이, 기타는 낡은 인습에서는 해방시켜 주었지만 자신의 유년기를 구속했던 아버지에게서 독립을 꿈꾸며 모래밭에서 아버지를 메친다.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면서도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 Le Corbusier를 찾아가 일을 배우던 그는 1954년 인도로돌아와 찬디가르Chandigarh와 아마다바드Ahmadabad 등에서 지어지는 르 코르뷔지에의 프로젝트들을 감독했다. 
1962년부터는 루이스칸Louis Kahn과 협력해 인도경영연구소를 설립하고 10년 이상 함께 일했다. 그는 서양 건축가에게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이 간직한 과거의 기억과 경험했던 자연과 인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경외를 담은 수많은 작업을 했다.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무척 많은 의미가 있다. 20세기 현대건축의 문을 연 거장들은 이미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흐릿하지만 건축의 전설 혹은 건축적 도그마로 남아 있는데, 그 바통을 이어주듯 도시가 모더니즘의 정신을 연결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더니즘이라는 몸과 인도의 전통 건축이라는 영혼이 적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배합된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또한 그의 수상은 굉장히 독특한 문화적·사회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서구 위주의 현대건축에서 변방 취급을 받던 인도의 건축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대인 출신 독일 철학자이며 아이히만과는 동갑(1906년생)이지만 같은 시대를 정반대의 상황 아래서 살아왔던 아렌트는 이 재판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를 스승으로 삼고 철학을 공부했으나 나치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해 연구와 저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잡지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아렌트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음을 강조하는 아이히만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정리한다.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행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죄는 생각하지 않는 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하지 않는 죄다 
남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죄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죄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떤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는 ‘최종해결‘과 같은 상투어로 그 추종자들이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현실을 단절시켰고, 아이히만과 같은 이들의 현실감각과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자신의 행동이나 언어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멈추면 그것 자체가 죄악인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아렌트는 말의 무능력, 사고의 무능력,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감의 무능력으로 정의했다. 

타인의 고통이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던지는 수많은 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뱉는 말이 아니라 상투적인 적개심이나 공격성을 아무런 감각 없이 내뱉어대는 말, 그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도 낯익은 상황이다.

온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든 슬픈 사건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 글이나 특정 지역, 여성, 소수자 등을 겨냥한 근거 없는 혐오가 난무하는 사이트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현재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우

리의 상황과 ‘악의 평범성‘은 너무나도 흡사하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단련된 언어에 대한 무감각한 관성이 현실에서 테러로 이어진 사건은 그것이 단지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치기 어린 장난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오해와 이해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한 유대인은 당시 유럽 유대인 인구의 3분의 2인 600여만명이라고 한다. 왜 나치는 그토록 유대인 배척에집착했던 걸까?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침체된 독일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했다고도 하고, 
그들이 축적한 자본을 빼앗아 전쟁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세계 경제위기나 테러의 배경에 유대인이 있다는 음모론이나 예수를 부정한 유대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이 역사적으로 오래도록 존재했다고 해도, 무모한 대학살로 이어진 것은 인류가 부끄러워해야 할 참담한 역사적 현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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