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시간을 감싸안으며 이어지는사랑과 숨의 기록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거쳐 내게 도착한 이야기 그렇게 나에게로 삶이 전해지듯 지금의 나도 그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과거의 무수한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지금의 나 또한 과거의 수많은 나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태생지를 빌려 삼천이로, 새비로 서로를 부르며 함께 한세상을 살아냈던 두 여성의 만남은 우정, 자매애, 사랑이라는 언어를 넘어선 근원성, 어쩌면 목숨과 목숨의 얽힘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가없이 그립고 정다운 마음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며 속삭인다. 난 너를 떠난 적이 없어. 아프고 서럽게 살아낸 목숨의 이야기들은 노래가되어 풀려나오고 읽는 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그 실타래의 한끝을잡고 자신이 갇혀 있던 상처와 혼돈과 환멸과 슬픔에서 그 어둡고혼란스러운 미궁에서 비로소 빠져나온다.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것은 더 큰 슬픔의 힘이리니 작가가 창조해낸 특별한 공간 ‘희령‘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오정희 (소설가)
천주님, 그때 뭐하고 계셨어. 어린아이들, 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찢겨 죽어가는 동안 뭐하고 계셨더랬어. 천주님은 죄가 없소. 내가 말했지. 기런 짓 한 거 다 인간들이오. 천주님도 마음 아프셨을 기라요. 희자 어마이, 전지전능한 천주님이 왜 손을 놓고 계신 거야. 나는 슬퍼만 하는 천주님께 속죄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 앞에서 내 탓이오. 내탓이오, 말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때 뭐하고 계셨느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 예전처럼 무릎 꿇고 천주님, 천주님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 기래, 나를 살려주셨지. 기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 목숨은 뭐가 되나.
삼천아, 내레 믿음은 없지만 배워 들은 것이 있는데, 희자 아바이 이야기는 무서울 정도였더랬어. 누군가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그게 천주님이라니. 희자 아바이, 죄받아요. 이제 그만하시라요. 말려도 소용없었어. 예전의 희자 아바이였다면 천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조선으로 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했을텐데, 희자 아바이는 천주님한테 사과받고 싶댔어. 그게 얼마나 무서운소리간 희자 아바이는 그날 이럴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말을 하고 그다음날부터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희자 아바이가 이렇게 화가 난 채로사람들에게도 화가나고, 천주님에게도 화가나고, 슬프고 또 슬픈채로떠난다고 생각하니 뼈가 삭는 것 같아.
기억해주갔어? 희자 아바이는 몇 번이고 내게 그 말을 했어. 기래요 희자 아바이, 내 희자 아바이 이야기 다 기억하갔시오. - P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