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도망 다니고 감옥에 있느라 은혜조차 갚은 바 없는 제자를, 
스승의 아들이 찾아오는 이유를 나는 묻지 않았다. 내 부모에게는 물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흔했다. 그러나 묻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내 빚이 될까봐. 아버지는 누군가의목숨을 살리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덕으로 살기도 했다.
빨치산들끼리 속엣말이라도 하고 살라며 어머니 아버지를 중매한 소선생은 결혼식은커녕 단칸방 하나 구할 여력이 없던 제자 내외를 위해 자기 집 문간방을 내주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선생은 일찍 떠났고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세상의 제자리를 잃고 돈도 없고 이름도 없고 정처 없는 내 부모를 보살핀 것이다.

내 부모가 은혜를 갚기란 진작에 튼 터, 자칫하면 은혜 갚기가 내 몫으로 오롯이 남을 판이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빨치산이 입은 세상의 온갖 은혜까지 물려받고 싶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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