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같이 알고이제 모기들이 득실대고 바다 얼음도 녹았으니, 지금쯤 북극곰이 가까이 왔을 겁니다. 사흘 만에 어린 백곰이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갓 독립해 거친 북극의 환경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온것 같았죠. "저 마을에 가면 이제 곧 에스키모들이 새 고래를 잡아 올 거라고 먼저 가서 기다려."라고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픽업트럭에서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습니다. 감자탕에 붙은고기를 파먹듯이, 북극곰은 몇 해간 얼었다 녹았다 한 고래 뼈에 붙은살점을 뜯어 먹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북극곰은 빨간 피를 얼굴에 묻히고 우리를 멀뚱히 쳐다봤습니다. 뒤로는 『눈의 여왕』에서나나올 법한 잔잔한 은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죠, 라고 쓰려니 고귀한 장면을 더럽히는 것 같군요. 이렇게 표현해야 옳습니다. 흡사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여 나는 숨막힐 듯 긴장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바라봤지만 해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갑자기 소란에서 조화로 이행한 듯했고, 이제 곧 진리의 신이강림하여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리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이 순간은 너무 아름답고 순수해서, 세상의 진리를 담은 결정체 같았죠. 나는 ‘이것이 바로 에피파니(epiphany)로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동물에게동류감(同)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치 사자가 하이에나를 ‘존 ‘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비슷한 서식지에서 비슷한 사냥감을 쫓는늑대를 인간이 존중했기 때문에 늑대가 더 쉽게 개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설도 있지요. 이런 환경에서는 인간이 세계를 보는 방식 또한 달랐을 거예요. 에두아르도 콘Eduardo Kohm이라는 캐나다의 저명한 인류학자는 『숲은 생각한다 (2013)에서 아마존강 원주민 부족의 사냥을 따라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밤이 되자 콘은 땅바닥에 엎드려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때 원주민이 다가와 ‘엎드려서 자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요. "반듯이 누워 자! 그래야 재규어가 왔을 때 그 녀석을 마주 볼 수있어. 재규어는 그걸 알아보고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엎드려 자면재규어는 너를 아이차(aicha, 먹잇감)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간단한 생존 전략 같지만, ‘재규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부족은 다른 동물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행동할지를 꿰뚫고 있어요.
안나 카레니나의 좁은 문가축이 되려면 무리 속에서 위계를 지을 줄 아는 동물이 유리합니다. 좁은 공간에 가두어 키워야 하기 때문에 동물들 스스로 질서를 잡아 주어야 편하기 때문입니다. 양이 대표적입니다. 자기네들끼리 서열을 이루고 무리의 리더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관리하기 쉽습니다. 늑대 같은 경우는 위계 서열에 따라 리더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늑대가 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인간을 자신의 리더로 생각하고 따랐던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영역 동물은 가축이 되기 힘듭니다. 이런 좋은 무리를 이루는 대신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단독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역이 분명한 동물을 한데 가두어 키우면 서로 물어뜯고 싸우다가 밤을 새겠지요. 호랑이나 사자가 가축이 되지 못하는 이유예요. 영역 동물인데도 예외적으로 인간의 땅에 자리를 잡은 동물은 고양이정도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에게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반독립적인 생활을 하지요. 외부와 손쉽게 연결되는 단독주택 같은 환경에서 고양이들은 수시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길고양이들은 지금도 반야생의 삶을 살고 있지요.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가축이 될 만한 동물은 얼마 되지 않을 것같군요. 적게 먹고, 성장 속도가 빠르고, 예민하지 않고 온순하며, 무리를 지어 위계를 따지는 동물이 인간 세계에 들어와 환영을 받고 가축으로 진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듬해에는 ‘동물판 N 번방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사람들이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고어 전문방‘을 개설하고, 동물 학대 영상이나 직접 찍은 학대 장면을 공유했던 거예요.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일부 참여자는 화살을 맞고 피 흘리는 고양이나 동물의 머리로 보이는 사체 일부를 담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남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좋지만, 여자를 괴롭히고 강간하고 싶은더러운 성욕도 있다"고 하는 등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암시하는 말도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고요. 동물자유연대는 이 사건을 두고서 "동물 학대의 저 어두운 심연에는 결국 사람에게도 고통을 가할 수 있는악마적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밝혔습니다.
방금 한 철학적 사고실험을 ‘한계상황 논증‘이라고 합니다. 아직 그 어떤 가정도 한계상황논증을 통과한 적은 없죠피터 싱어는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을 불러와 깔끔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벤담은 1789년 펴낸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문제는 동물들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또는 대화를 나눌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인간을 포함한 상당수의 동물 좋은 고통을 피하고, 먹고 자는 욕구를 충족하며, 새끼들을 보살피고, 다른 존재로부터 불필요한 간섭을받지 않으려는 기본적인 이해관계를 갖습니다. 싱어는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이런 이해관계를 갖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보죠. 그리고 ‘감응력 있는 존재‘(sentient being)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고말하지요. 감응력(sentience)은 ‘쾌고(苦) 감수능력‘이라고도 하는데,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뜻해요. 경의선숲길에서 동물 학대범에게 쫓겨 바닥에 패대기쳐진 고양이부터 도살장 앞에서 괴성을 지르는 돼지들까지 대다수 좋은 고통을느낍니다.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서는
어려서 동물 학대를 한 사람이 커서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에요. 실제로 연쇄살인범에게 이러한 경향이 발견되어, 미국연방수사국(FBI)은 범죄자 신상명세(NIBRS, 국가사건기반보고시스템)에 동물학대 전력을 기록하고 있죠. 칸트와 달리, 앞서 14장과 15장에서 살펴본 동물권 철학자들은 동물에게 ‘직접적인 지위‘가 있다고 봅니다. 제러미 벤담에서 시작해 피터 싱어에이르는 공리주의자들은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톰 리건 등 동물권론자들은 동물이 삶의 주체로서 삶을 향유할 내재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지위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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