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 내어 유난히 민감한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깨어지기가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P90

은방울꽃은 숙명의 교화(校花)였다.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고다니던 배지도 은방울꽃을 도안한 거였고, 교가도 은방울꽃의 수줍음과 향기를 찬양한 내용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하도 각박한시대에 입학을 해서 그런지 살아 있는 은방울꽃을 본 적은 없었다. 관념적으로 모호하게 미화됐던 은방울꽃의 실체를 발견한 날은 온종일 이상하게 우울하고 마음이 아팠다. 장차 이 세상은 어찌 될 것이며 나는 어찌될 것인가, 내가 지금의 이 상태에 완벽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이 상태가 영속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나는 막연하게지만 자연과 행복하게 일치된 것같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마음이 생겼고, 나의 중요한 일부를 서울에 남겨 놓고 온 것처럼 느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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