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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무엇을 쓰던 쉽게 나오면 좋겠습니다만 그럴 리 없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엔 술술 마음 내키는대로 질러대지만 소설을 쓸 때엔 신중합니다. 꽤나 생각을 한 후에 쓰기 시작하면... ... 음, 아니네. 처음에 생각만 깊지 쓰기 시작하면 써질러대는구나. 그러고서 나중에 고치는구나! 누가 보면 "아니 지금 글 잘 쓴다고 자랑하는 거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결코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마치 숨을 쉬듯 즐겁게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글은 완성도가 균일하게 높을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어느 순간부터 "지금처럼 쓰는 것은 좋지만 완성도를 균일하게 맞춰야 해."라는 묘한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쓰도록 노력을... ... 네,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눈 앞에는 한 명의 작가,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입니다. 생각합니다. 이 책은 과연 나처럼 쓴 소설일까? 아니면 치밀한 계산 후에 적은 소설일까?
'점과 선'의 이력은 대단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추리소설이자 대표작이며 1957년 2월 부터 1년간 잡지에 연재, 바로 이듬해 단행본으로 간행된 뒤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기록합니다. 같은 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2009년에는 100주년 특집극으로 방영,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을 맡았더랬습니다. 아직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이 '점과 선'을 따를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단 두 형사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 명의 노장형사가 문제를 제기하고, 그 과정을 뒷받침하듯 젊은 형사가 파고든다. 이 과정을 통해 여러 일본 형사물에서 볼 수 있는 형사콤비의 활약을 보게 됩니다. 헌데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사 콤비라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치고박고 다투고 이런 식의 과정을 생각하겠으나, 마쓰모토 세이초 최초의 콤비는 직접 만난 시간보다 편지를 통한 교류가 훨씬 깊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터진 후 두 명의 형사는 서신을 통해 의견을 교류하며 사건을 풀이해 가는 것입니다.
두 명의 접대부가 단골손님을 마중하러 도쿄 역 13번 홈에 갔다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합니다. 플랫폼 맞은 편, 열차 너머로 보이는 15번 홈에서 동료 접대부가 수수께끼의 남자와 함께 침대 특급열차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접대부들은 동료 접대부가 저런 여행을 가다니, 뒤로는 남자를 만나고 다녔구나! 놀라면서도 어찌하여 저렇게까지 숨겼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동료 접대부와 남자가 동반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청산가리가 들어간 주스를 마시고 후쿠오카의 어느 해안에서 죽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후쿠오카 경찰서의 베테랑 형사 도리가이는 남자쪽 피해자가 소지한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으로 체크된 것이 수상합니다.
"음, 그렇군!"
주타로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스미코가 적절한 한 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식욕보다 애정의 문제! 그래, 그거다.
'1인'이라고 적힌 열차 식당의 영수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리카이 주타로가 막연히 미심쩍게 생각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남녀는 이제부터 자살을 하려고 멀리 규슈까지 가는 길이다. 애정은 평소보다도 한결 깊을 것이다. 게다가 열차 안이다. 남자가 식당차로 가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같이 가서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좌석은 지정석이니까 두 사람이 비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길 염려는 없다. 혹시 선반 위에 얹어둔 짐이 신경 쓰여서 여자가 남았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주타로는 사야마와 오토키 사이에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p.44~5)
단순한 의문에 도리가이는 사건을 파고 들고 얼마 후, 경시청에서도 이 사건에 주목하는 자, 미하라 경위가 나타납니다. 그 남자의 신원 때문입니다. 남자는 야스다. 이 야스다는 어느 국가기관의 비리와 관련된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돌연 동반자살을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 동반자살엔 뭔가 곡해가 있다고 생각하여 조사를 펼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비로 열차시간표 트릭입니다. 미하라 경위는 머리를 쥐어 싸매며 이 사건의 뒤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여 끈질기게 파고 듭니다.
'점과 선'의 가장 큰 매력은 줄거리에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쓰지만 제 가장 친한 친구들은 사람 죽는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꼭 소설 속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느냐고 묻고, 너무 많이 죽이면 더더욱 싫어합니다. 저 역시 이런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무슨 벼 베듯 그렇게 쓰러지는 게 싫어졌습니다. 이유없이 단순하게 사건의 전개만을 위하여 한 명 죽어도 될 것을 세 명 죽여서 연쇄살인, 연속살인 만드는 것이 싫어졌달까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점과 선'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지 않습니다. 또 죽음 그 자체를 처참하게 그리기 보다는, 그들이 '왜' 죽었는가를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풀어가고, 그 과정을 통한 순수한 '수수께끼 풀이'라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너무나 단순하게, 치밀하게 사건을 풀어가는데 그 과정이 단순하기에... ... 우아합니다. 구태의연한 묘사도 없고,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 묘사도 없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 아니 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결코 거북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여행입니다. 게다가 전국을 돕니다.
"좋으시겠어요. 며칠 전에는 규슈에 다녀오시더니 이번엔 홋카이도! 서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종행무진이시네요."
듣고 보니 정말 무대가 일본의 끝에서 끝으로 확대되었다. p.122
마쓰모토 세이초는 '점과 선'이라는 거대한 열차에 우리를 태우고 그렇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삶은 달걀을 깨먹으며, 땅콩과 맥주를 먹듯이 심심풀이 겸 "이야기 하나 해줄까?"하며 어찌 보면 어려울 것만 같은 이야기를 그렇게 부드러운 표정과,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하니 우리는 그저 이 책을 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즐기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