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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평점 :
교보문고가 시스템 점검이라기에, 이쪽에 리뷰를 올리러 들어왔더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_- 에잇 몰라. 지가 올리면 올라가겠지. 난 모른다. 내 배를 알아서 째거라. 둥둥둥.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 ‘맛있는’ 책, 한 입 드셔보실래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연작집 ‘얼간이’와 ‘하루살이’ 리뷰
잠은, 언제나 새벽 너덧 시가 넘어야 온다. 보통 이 시간에는 글을 쓰는데, 요 며칠은 머릿속이 복잡하여 영 써지지가 않는다. 뭔가를 쓰고, 또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할 때의 기분이란, 말 그대로. ‘뷁’이다. 푸념은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미루고 미뤄온 얼간이와 하루살이 리뷰로.
미미여사님을 좋아하고, 또 이유를 보고 반해서 “와, 나도 이런 글 쓸테얏!”하고는 본격적으로 미스터리를 읽고, 공부를 시작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대물은 잘 손에 안 잡힌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와 ‘괴이’는 상당히 편하게, 게다가 매우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외딴집’은 처음에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리 앞쪽이 답답합니까?”라고 몇 번이고 묻다, 아아. 하권에 가서야 알았다, 그 깊이를.1) 흔들리는 바위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뭔가 지쳐서(나오는 것 기다리다 관두기도 했고) 메롱도 조금 읽다 “뭔가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하며 놓아버렸는데, 얼간이가 다시 날 붙잡았다(덕분에 메롱도 다시 읽었다.)
일단 정의하고 들어가자. 얼간이와 하루살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헤!”2)이고,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크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와 감동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연작집’이다.
자, 그렇다면 대관절 연작집이 뭣이던가!3)
일전 한 술자리에서 ‘추리연작집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미스터리 하시는 분들께서 여러 책들을 이야기하셨지만, 하나같이 퇴짜를 맞았다. 유일하게 공감한 것이 바로, 미미여사님의 ‘나는 지갑이다’였다. 내가 괜히 신이 나서 바로, ‘얼간이도요!’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자리엔 읽은 분이 없어서 동의는 못 받았다. (아흑)
이날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시리즈와 연작은 다르다. 그 날 한 미스터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미스터리하시는 분께서 말씀해주신 매우 쉬운 구별법에 따르면, 셜록홈즈와 긴다이치 쿄스케, 갈릴레오는 대표적인 시리즈이지만, ‘나는 지갑이다’와 ‘얼간이’, ‘하루살이’ 등은 연작이다. 시리즈와 연작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큰 특징만 말하자면, 시리즈는 주인공을 정해놓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같은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고, 연작은 각각의 중단편이 통일성을 가지면서도,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일종의 연계 고리가 있는 것이다. 시리즈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주인공을 따라 자연스레 전개되어 하나의 커다란 작품4)이 되는 것이며, 또 오랜 기간에 걸려 쓴 작품이 대부분이다.5) 연작은 주인공은 전혀 다르고, 앞이나 뒤의 작품을 읽지 않아도 각각의 작품을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으나, 함께 읽으면 더더욱 재미있어진다. 또 쓴 기간이 대부분 (시리즈에 비해) 짧다. 여기에 전제조건이 붙는다.
‘재미있게’ 써야 한다!
‘이스터 에그’를 찾는 기분이 들게끔, 독자를 ‘오덕’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볼 때엔 시리즈보다, 연작을 재미있게, 짜임새 있게, 구성이 튼튼하게 쓰기가 훨씬 더 힘든 듯한데. ‘얼간이’와 ‘하루살이’는 놀랍도록 촘촘하단 말이다. 내용과 줄거리는 자세히 말하면 바로 스포일러가 되니 될 수 있는 한 참겠다. 대신 알쏭달쏭하게 설명하자면, ‘얼간이’는 요즘 말로 하자면, 빌라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에서 일어난 수상쩍은 사건들을 차례차례 다루며, 그 뒤에 ‘무언가 있을지도 몰라’라는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다 마지막에 가서 “오호라!”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이야기이고, ‘하루살이’는 장소는 다르지만 사람이 같다. ‘넓은 연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는데, ‘얼간이’에 등장하거나, 등장하지 않았어도 ‘그림자’를 보였던 인물들이 사는 곳에서 터지는 수수께끼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다, 마지막에 가서 가장 ‘큰’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왜 있잖은가. 변소나 기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간 때우기 수수께끼 풀이모음처럼, 시간 죽이기에 그만인 이야기들처럼—윽, 이렇게 말하면 너무 버릇이 없구나. 완성도와 작품성의 ‘급’이 다른데. 더불어, ‘하루살이’는 ‘얼간이’에 등장했던 미소년 탐정 유미노스케를 재차 등장시키며, ‘이 아이가 이렇게 컸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특히 내가 마음에 든 유미노스케의 ‘성장’을 보여주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좀 길다.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정독하실 분이라면, 나중의 재미를 위해 넘기시라.
하루살이 下 pp.173~175
그런데 너—하고 헤이시로는 처조카의 매끈매끈한 흰 구슬 같은 얼굴을 보았다.
“어째 요즘은 측량하는 걸 통 못 보겠구나. 취미가 바뀌었냐? 그 사사키인지 하는 선생한테는 지금도 드나들며 배우고 있겠지?”
유미노스케는 헤이시로의 집에 무시로 드나들기 전부터 사사키 미치자부로라는 떠돌이 선생을 사사하고 있었다. 서쪽 지방에서 흘러다니다 에도에 들어와 사가초에 있는 나가야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이 선생을 유미노스케는 깊이 존경하는 눈치다.
그건 좋은데, 문제는 사사키 선생이 세 끼 밥보다 측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측량을 해서 지도나 지역 상세도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 제작은 본래 막부가 관장하는 분야인지라 허가 없이 지도를 만들면 중벌을 받는다. 유미노스케는, 선생님은 당신의 학구를 위해 지도를 만드시는 거니까 문제 될 것 없습니다, 하고 단언하지만 일단 관에 적발되고 나면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헤이시로는 적이 걱정스러웠다. 아내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금도 배우고 있죠. 읽기 쓰기 셈법을 가르치는 일이 선생님의 직업이니까요. 아무튼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이모부.”
유미노스케는 헤이시로의 손을 놓고 조금 떨어지더니 걸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선생님도 요즘은 꽤 조심하시나 봐요. 학동들에게 지도나 상세도 제작을 거들게 하는 일도 없어졌어요.”
그 말을 들으니 헤이시로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제가 뭐든지 측량하는 버릇을 버린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사사키 선생님이 ‘이제 그럴 시기는 지났다’라고 일러 주셨기 때문이죠.”
처음 유미노스케를 만났을 때, 헤이시로는 눈에 비치면 뭐든지 일일이 측정해 보는 소년이 매우 흥미로웠다. 왜 그렇게 측량을 하느냐고 묻자 유미노스케는 이렇게 대답했다.
—측량해 보면 이것과 저것의 거리를 알 수 있고, 거리를 알면 만물의 생김새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헤이시로가 물었다.
“사사키 선생이, 이제는 네가 만물의 생김새를 알게 되었으니 일일이 측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든?”
유미노스케는 당혹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천만에요. 저 같은 건 아직 멀었죠. 게다가 설령 만물의 생김새를 알았다 해도 그건 세상 이치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측량해 보면 세상 이치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측량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는요.”
유미노스케는 제가 하는 말을 새기듯이 천천히 말했다.
“세상 이치가 측량이 가능한 사물로만 드러나지는 않으니까요. 사사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이제 사물을 측량하는 기술을 익혔으니 앞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잘 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이제 측량은 적당껏 해라, 라고 하셨어요.”
헤이시로는 걸음을 멈췄다.
“어디, 네 신발 좀 보자.”
유미노스케는 신고 있던 작은 조리를 벗어서 순순히 내밀었다. 헤이시로는 신을 뒤집어 보았다.
“오호, 정말이구나. 못이 없네.”
뭐든지 눈에 띄는 대로 측량을 할 때 유미노스케는 조리 신발 앞과 뒤에 못을 하나씩 박아서 신고 다녔다. 못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소리를 듣고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보폭으로 걸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잘 보라니, 참으로 어려운 요구다. 다시 조리를 신는 유미노스케를 바라보며 헤이시로는 잠시 생각했다.
“너희 선생이 말하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은 이를테면 어떤 거냐?”
때마침 휘익 불어온 바람에 유미노스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사람의 마음이 있겠지요?”
과연. 그것은 무게로도 치수로도 잴 수 없다.
으, 이 뒤의 대화까지 적고 싶었는데, 이 직후의 대화가 앞 에피소드의 스포일러가 되어서 참았다. (흙흙) 궁금한 분들은 어떻게든 책을 보시라. 도서관에서 빌려보시든, 남에게 얻어 보시든,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아보시든, 마지막으로 사서 보시든(이 글씨가 특히 크고 진해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당신 맘이다.
얼간이와 하루살이를 읽는 또 다른 포인트는 바로, ‘음식’이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꼭 내 속을 태워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만으로 입안에 군침이 도는 음식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온다.6) 특히 상권의 ‘눈먼 사랑’은 배고플 때 보면 입에 게거품 물기 딱 좋다.
개인적으로 오토쿠와 오미네의 음식대결, 심판은 헤이시로, “우헤!”라고 부르는 에피소드.
p.206
“가지 초간장 조림. 된장을 바른 작은 감자 튀김. 건표고 구슬 곤약 조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리가 반색하며 잡수신 고기 완자 꼬치는 흔한 닭고기가 아니라 메추리 고기예요, 메추라기. 풍미가 다르고 별미죠. 저쪽의 작은 생선은 단풍 떡붕어고요. 비와 호수에서 잡히는 떡붕어는 가을이 되면 지느러미가 빨개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대요. 교토에서는 그걸 생으로 말려서 파는데, 그걸 구해다가 달콤 매콤한 양념장을 발라서 구워 낸 거예요.”
고헤이지가 “우헤!”하는 소리를 냈다. 감탄한 것이다.
‘... ...먹고 싶어서라도 일본여행을 하게 만들려는 미미여사님의 계략이 분명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간이와 하루살이는 눈물 나게 ‘맛있다.’ 색이 강하고, 향신료를 많이 쓴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정성이 듬뿍 든 가정식 요리다. 더더욱 ‘맛있고’ 무엇보다, ‘질리지 않는다.’
그렇다, ‘얼간이’와 ‘하루살이’의 가장 큰 미덕은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사를 위해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되풀이해 읽고, 공부해도 결코 지치지 않는다. 재독의 기쁨을 주게 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어, 보면 볼 수록 “후후후, 베이베 컴온.”이라고 중얼거리게 한다. 이스터에그에 탐닉하고, 나만이 찾을 수 있는 수수께끼에 싱글벙글하는 나같은 오덕을 위해 딱이다.
참 좋다, 이 책. 훌륭한 연작집이다.
덕분에 연작을 쓰고 싶어져서, 무턱대고 연작을 준비했다. 작년 말에 기획을 잡고 두 편을 쓰고 네 편을 더 써야지, 하고는 잠시 넋을 놓았다. 본격적으로 적어내리면, 미미여사님의 얼간이와 하루살이를 달달 외우도록 끝도 없이 읽게 생겼다.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이번 ‘하루살이’에 큰 공을 들이셨다. 하루살이 상권 첫장의 미야베 미유키 님의 친필 사인이 ‘인쇄’되어 있다(요거 착각하지 말자. 인쇄다. 착각하면 괜히 심통만 난다.) 또 현재, 하루살이 오디오북을 만드신다고 ‘독자배우’를 섭외하신단다. 사실 나, 대놓고 “유미노스케 시켜주세욧!”하고 싶은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참았다. 난 너무 친한 척 많이 했으니, 작년 이 맘 때에 북스피어에 친한 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나처럼, 고민하고,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기회를 남기고 싶달까. 자자, 지원하시라. 아직 지원자 받는다더라. 링크 주소는 요기.
배우 대모집 (크랭크인 일정 변경에 따른 긴급공지) http://booksfear.com/401
* 맨 아래문단이 지나치게 홍보 같아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하지만 전, 아시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출판사 직원은 아닙니다. :)
1) 후에, 처음 시작의 ‘새벽바다에 토끼가 날고 있다.’ 부분을 집필 중인 소설 ‘기옥’에서 대사로 인용해 먹기도 했을 정도로 감명 받았다.
2) 요건 본 사람은 모두 동감하죠?
3) 미리 말한다. 사실 맞춤법은 ‘든’이 맞는데, 글자가 ‘던’이 더 예뻐서 난 요렇게 쓴다. -_-;;;
4) 실제로 셜록 홈즈, 뤼팽 등을 순서대로 읽으면, 큰 흐름이 나타난다. 시리즈 안의 기승전결이 있단 말이지. 퇴마록도 그렇고.
5) 셜록 홈즈와 긴다이치 쿄스케가 몇 년 동안 연재되었는지 아는 분 손들어보세요! (정답은 책을 사서 뒤에 프로필이나 약력, 작품목록 등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6) 결국 친구 따라가서 상수역 근처, 경단꼬치구이 파는 가게 ‘당고야’에 가서 사먹었다. 커다란 개를 키우고, 캡슐커피를 팔며, 단팥을 직접 만드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는 가게다. 자세한 정보는 귀찮아서 난 포스팅 안 했으니, 궁금한 분들은 아래의 신문기사 링크를 따라가시라.
입안 간질이는 당고맛 ‘당기네'
http://www.fnn.co.kr/content.asp?aid=74ed8f1f417e46e6a1f30ebf1473a66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