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 -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배우는 정의
켄지 요시노 지음, 김수림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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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러 분야의 책을 즐깁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공감각적 분야 말입니다. 예를 들어 문학과 음악에 대한 이론을 사조별로 풀어낸던가, 처음엔 분명 양자물리학에 대한 글이었는데 한참 보니 이건 생철학인가? 싶은 책, 혹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내용인 줄 알았더니 삶을 논하더라, 이런 책들 말입니다. 이런 책들은 한 달음에 읽기가 아쉽습니다. 때문에 저는 야금야금 읽습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심할 때엔 일 년에 걸쳐서, 혹은 몇 년에 걸쳐서. 즐겁기 때문입니다. 아깝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모든 것과 내가 아는 모든 것과 앞으로 알게 될 모든 것들, 책을 읽고 쉬는 사이에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 책 속에서 발견한 또다른 자아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은 책은 세 달에 걸쳐 읽은 켄지 요시노 교수의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입니다.

    

셰익스피어를 모르고는 문학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던가요? 저는 자주 들었는데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문학을 이야기할 때, 특히 영문학과 희곡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입니다. 저 역시 과가 과인 만큼 대학 다닐 때에 교수님께 귀에 딱지가 앉도록 셰익스피어의 대단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는 방학숙제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이니 5대희극이니 이런 걸 필사하라는 어마어마한 숙제를 요구받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전 안 했습니다. 당당하다! 와! 와!) 흔히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에는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하도 많은 작품을 쓴 데다가 그 작품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그 안에 숨은 내포의미들이란! 지금 봐도 입을 떠억 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셰익스피어, 정의를 말하다'는 이런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중 아홉 작품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저도 낯설었습니다. 직접 읽은 적은 없는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미국의 9.11 테러 이후 동해보복,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정당성을 논합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서두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더군요. 두 번째 작품은 너무나 유명한 바로 그 '베니스의 상인'입니다. 재치 넘치는 여인 포샤의 정의로움을 이야기하는데요, 신선하더군요. 과연, 변호사들이란...! 후후. 하고 웃었습니다. 세 번째 작품은 '자에는 자로'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가 변호사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세 번째는 판사의 자질입니다. 변호사들의 감언이설에 어찌하면 넘어가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는가에 대해 설을 풀고, 네 번째 작품은 오셀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예시된 사건은 O. J. 심슨! 세상에나, 장갑이 손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앗 스포일러다!) 다섯 번째 작품은 헨리아드 중 헨리 5세를 다루며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도 운을 떼기는 하였으나 다시 한 번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합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는 멕베스 작품보다 더 유명한 멕베스 징크스를 이야기합니다. 멕베스를 공연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되풀이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켄지 교수는 이 이야기에 대해 몇 가지 역설점과, 명쾌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이자 법학교수인 앨런 더쇼비츠는 1996년에 발간된 그의 주목할 만한 수필집에서 '삶은 극적인 서사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먼저 '첫 번째 장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다고 설명했다면, 두 번째 장이나 세 번째 장에서는 반드시 총이 발포되어야 한다'란 안톤 체호프의 말부터 소개했다. 체호프가 작가들에게 했던 말이다. 더쇼비츠는 체호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문학적 서사는 우리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학적 서사의 세계에서는, '가슴 통증이 있은 다음에는 심장 발작이, 기침을 한 다음에는 폐결핵 증상이, 생명보험을 든 뒤에는 살인이, 전화 벨소리에는 극적인 소식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가슴 통증 뒤에 소화불량이 찾아오고,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린 것이고, 생명보험을 들면 지긋지긋한 보험료 납입이 따라올 뿐이다. 아, 그리고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마케팅 서비스 업체 직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p.317~8)

 

 

학교 다닐 때 생각나서 "크핫!"하고 크게 웃었습니다. 안톤 체홉의 이야기는 저 역시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지라.(후후)

 

일곱 번째 이야기는 햄릿입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만든 여러 인물들 중 눈에 띄게 몽상적인 인물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합니다. 복수를 하는 것과 살인을 범하는 죄 사이에서 큰 고민을 한달까요. 그런 인물을 통해 켄지 교수는 완벽한 정의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완벽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는 마침내 리어왕이 나옵니다. 리어왕을 생각하면 의례 떠올리게 되는 그 말, '정의가 도대체 무엇이지!'를 재점검시킵니다. 쇼킹하달까요, 그 시점이. (이런 분석은 생각치 못했어.)

 

마지막은 템페스트입니다. 템페스트는 여러 해석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관점의 분석을 보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에피소드에서 작년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하였던 드라마 템페스트를 떠올렸습니다. 드라마 템페스트는 오키나와에 있었던 류큐 왕조 이야기를 합니다. 류큐 왕조는 일본이 개항하였을 당시 가장 먼저 그 대상으로 몰렸던 곳입니다.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류큐만의 왕이 다스린 곳이었습니다. 때문에 류큐 왕조는 서구, 러시아, 중국, 일본 이 네 곳의 사이에서 교묘한 군형을 이루며 살아야만 했는데요 과연, 이 류큐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외딴 섬과 그 모습이 닮았습니다. 또 템페스트는 첫 번째 이야기였던 '티투스 안드로니쿠스'와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 처참한 동해보복을 이야기한다면, 마지막 이야기 '템페스트'는 무한한 용서를 선보입니다. 용서를 통하여 진정한 정의를 꾀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에필로그에서 진정한 아름다움,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안합니다.  

 

바사니오님, 소녀는 여기 서 있는 보시는 바 그대로 저올시다.  

저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이 이상 더 좋아지려는 야심은 품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선 스무 배를 세 갑절한 만큼 훌륭한 여자가 되고 싶고,

천 배나 더 아름다워지고 싶고, 만 배나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베니스의 상인>, 3.2.149~154)

  

에필로그의 시작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대사입니다. 포샤가 연인 바사니오에게 바친 사랑의 헌사인데요, 이 헌사에서 특히 밑줄 친 부분을 봐 주십시오. 이 밑줄 친 부분의 원문에서 '아름답다'의 단어가 'fair'였더군요. fair는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 공정하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즉,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인 포샤는 정의로워지고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이 부분이 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거든요. 누구나 한 번쯤은 실연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슬펐으나 조금 지나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때문에 저는 아름다워지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심각한 비만아였고, 외모도 별로 봐줄만한 수준이 못 됐습니다. 또 어두웠고요. 만화주인공처럼(!)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다이어트도 하고, 외모에 신경도 쓰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 성격도 바꿔보고요. 그러고 나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군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외면은 물론 내면도 가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준을 바로 세우고 옳은 것이 무엇인가 그른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그른 것은 행치 않는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결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마음 먹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나쁜 사람도 됐습니다. 힘든 때도 있었지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 감당도 내 몫이니까. 또, 시간은 내 편이니까. 시간은 그런 것이더군요. 아무리 깊은 생채기가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웃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 모든 아픔마저 마음 속에 담았습니다. 차곡차곡 개켜 저 귀퉁이에 모셔 고이고이 두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꺼내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할까, 그때의 행동은 옳았을까. 후회를 하고, 다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제가 어떤가요, 아름답나요. 아닌가요?

신은 어떤가요. 아름답나요, 아닌가요?

우리, 서로에게 물읍시다.

그리하여 정의를 이야기해 봅시다, 셰익스피어처럼.

정의로워집시다,아름다워집시다, A thousand times more f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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