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쇠스랑개비
p 16 쇠스랑개비는 할머니 생애 최초의 별명이었다.
쇠스랑개비는 어떻게 생긴 풀인지 궁금했다. 딱히 화려하지도 이쁘지도 않은 풀이었다. 길가 흔하게 보았던 풀인데 키가 낮고 가시가 있어 보이는 노랑 꽃이 피는 잡풀같다. 그래서 표지도 노랗게 물들여 놓았는지 모르겠다.
p 22 할머니가 사시면 200살까지 사시기를 바라는 한편 정말 200살까지 사시면 어떻하나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책제목을 보고는 놀랐다. 설마 내일 모레 200살? 고향은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구산리. 1925년생이다.
따뜻한 마음
p 30 할머니의 무게는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무게는 그리 버겁지만은 않았다.
p 37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도 최대한 식사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다.
p 114 할머니에 대한 생각은 이윽고 나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 일은 단지 그 분에 대한 일만은 아니다. 점차 나에게로 좁혀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할머니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물론 언제 떠나셔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거실에 놓여 있는 영정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p 222
할머니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물론 언제 떠나셔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거실에 놓여 있는 영정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옥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p 222
p 237 졸고 있는 할머니를 깨운답시고 훨체어의 발 받침대를 몇 번 찼던 게 떠올랐다.
작가의 탓이 아님을 그의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할머니는 손자가 정성스럽게 케어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기일도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아버지는 짦은 병상 생활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 넌 니 할 도리를 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