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4.6
이 책의 주인공은 와타나베다.
프로그램 엔지니어로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내 가요코에게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을 줄곧 받으며 그녀에게 의뢰된 남자들에게 협박과 고문을 당하고 팔이 부러지는 등 고통을 겪는 남자다.
어느 날 와타나베는 회사에서 우연히 맡게 된 고슈라는 만남 사이트의 일을 하게 되고, 후배인 오이시와 함께 전임자인 고탄다의 도움을 얻어 맡은 일만 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 사이트에 숨겨진 암호를 풀게 된다.
그로 인해 하리마자키 중학교, 안도상회, 개별상담 이라는 키워드를 얻게 되고 이 세 단어를 합쳐 검색한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를 입게 됨을 알게 된다.
자유로운 교칙의 하리마자키 중학교에서 어느 날 8명의 복면 쓴 사람으로부터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일어난 인질극 과정 중 한 반의 20명의 학생과 참관하던 부모, 교사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가시마라는 학교 관리인이 배수구를 타고 기어와 다른 반에 뛰어내려 복면 쓴 사람들을 죽이며 끝나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과 안도 상회의 연관성을 조사해가며 와타나베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허무맹랑한 초능력이 나오는 한편 너무나도 현실적인 시스템과 프로그램 같은 이야기도 뒤를 잇는다.
주목했던 것들은 별 게 아니었고 별 거 아니라 생각했던 건 아주 거대한 것이었다.
역발상이며 모든 걸 뒤집는 일이 가능한 이야기다.
모든 걸 알게 된 후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훨씬 더 잘 보이고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독재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이루는 부품에 불과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영화인 <모던 타임스>라는 제목으로부터 암시된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잔혹동화일까, 분명히 영상화되면 19금 딱지를 달 정도로 잔인한 내용들이 펼쳐지고 정말 심오한 내용을 담고있지만 왠지 모르게 유쾌하다.
어린이용이 아닌 애니메이션 같다.
전혀 상관없지만 장르로 치면 액션이고 느와르다.
마치 ‘동쪽으로’처럼 과장을 보태자면 종말에 저항하는 어드벤쳐다.
액션도 아니고 종말이라니 택도 없지만 그냥 그런 게 떠오르는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선 ‘로렌스를 구해줘’가 연상되는, 역시 도전이고 모험이다.
긴 이야기지만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유효하다.
낭비 없이 꽉 들어차있는 이야기가 그 밀도 만큼 빽빽한 감상을 돌려준다.
개정판에서 진상을 대폭 수정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빠뜨린 게 하나도 없다.
탄탄하다기엔 그렇고, 뭐랄까 너무도 잘 갖춰져 아주 잘 돌아가는 듯하다.
만들어 둔 톱니바퀴가 너무도 튼튼해 막힘 없이 굴러가는 기분.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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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4.1
어릴 적 괴물에게 형을 잃고 평생을 불안 속에 사는 아빠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난 짐은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 밖의 인물이고 하나 뿐인 친구 터브는 스티브라는 인기인에게 매일 5달러를 갖다 주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터브와 함께 스티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날들 속에서 짐은 어느 날부터 괴물의 존재가 자신에게 가까워 옴을 직감한다.
그리고 침대 밑에서 튀어나온 괴물의 손에 끌려 지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괴물들을 피해 도망치다 이상한 갑옷으로 온몸을 뒤덮은 소년을 만난다.
트롤이라는 이름을 알려 주고 잔뜩 겁에 질린 짐에게 그는 시간이 없다며 어서 청동 메달을 목에 걸라고 하고 해가 뜸과 동시에 자신의 방으로 넘어 온 짐은 바닥에 떨어진 청동 메달을 보며 불안에 떤다.
그 후 소년이 아빠가 어릴 때 실종된 삼촌 잭임을 알게 되고 그가 트롤 헌터로서 블링키, 아르르르!!와 함께 싸우게 된 이야기와 블랙 건마의 존재, 우유갑 연쇄 실종사건과 트롤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온 블랙 건마를 없애기 위한 전쟁에 트롤 헌터로서 동행하기로 한다.

이런 류의 판타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땅히 대체할 책이 없었다.
중간 중간 트롤들의 모습을 알려주는 삽화들이 이해를 돕지만 그럼에도 영 집중이 안 되고 읽히지가 않는다.
주인공의 모험이 억지로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느낌이 줄곧 이어지고 모든 도전의 이유는 그저 짝사랑 상대인 클레어를 향한 마음 뿐이다.
삼촌인 잭의 정체는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만큼 쉽게 밝혀지는데 정작 형제인 아빠와 잭과의 관계는 몇십 년을 넘어 겨우 재회했음에도 하나도 정리되는 게 없다.
녹 트롤이나 널헐러 등등 여러 트롤이 검검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생김새가 묘사되지만 삽화와 설명을 매치하기가 쉽지 않다.
또 블랙 건마의 수하로 봐도 좋을 검검들의 행적이 너무 자잘하고 귀찮은 것들이라 적수가 되지 않는 듯하고 너무 짧고 단발성의 충돌 때문에 굳이 등장한 이유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널헐러 같은 속성이나 그들이 하는 짓은 꽤 섬짓하고 길게 다뤄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는 잘 흘러가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가버리는 바람에 맥락이 끊기는 부분이 꽤 있다.
그럼에도 아빠의 잔디깎기, 터브의 치아 교정장치, 짐과 터브의 밧줄 타기, 로미오와 줄리엣 등등 모든 떡밥은 티나게 회수되었다.
묘사들을 제외하면 내용 자체가 탄탄하거나 다양하지 않아서 딱 청소년들을 겨냥한 것 같은 정도인데 그런 것 치고는 또 너무 어둡고 탁하다.
마법사처럼 혹은 히어로처럼 똑같이 인류를 구한 셈인데 이쪽은 역겨운 오물을 뒤집어 쓰고 타르 같은 액체에 몸을 적셔서 이뤄 낸 성과다.
과연 누구의 환상을 자극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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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포장마차 1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정가일 지음 / 들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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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정해진 장소 없이 출몰해 자정 전까지 프랑스 코스 요리를 9800원에 판매하는 신데렐라 포장마차가 있다.
퀴즈를 푸는 자에게는 오늘 밤 신출귀몰한 포장마차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도, 찾아 온 사람도 모두 9800원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곳, 그리고 그와 얽히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주댁 설렁탕으로 재벌이 된 할머니 살인사건, 혼인신고 전 암에 걸려 사망한 남편이 남긴 마지막 선물을 찾는 일, 신데렐라 포장마차의 퀴즈를 가장 처음 풀었던 명품으로 치장한 학원강사와 그의 여자친구.
각각의 이야기는 콩소메, 뵈프 부르기뇽, 물 마리니에르 라는 각각의 프랑스 요리와 어우러지며 감칠맛을 돋운다.
특별하지 않은 사건들에 프랑스 요리가 곁들여지며 한층 탄탄해지고 구색을 갖춘다.
김건의 잃어버린 기억들과 신영규와의 관계, 신영규가 변하게 된 계기와 프랑수아의 비밀 같은 것들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다음 이야기를 위한 구실을 만든다.
중간 중간 갑자기 흥분한 듯한 과한 부분들과 개그인지 모를,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름 같은 게 몰입을 방해하여 아쉽다.
첫 부분만 읽고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가 떠올라 표지만 보고 기대했던 마음이 확 식어버려서 휘리릭 넘겨보다가 발견한 페이지가 ‘문제 유기체설’, 즉 C.O.T를 소개하는 페이지였기에 다행히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실 프랑스 요리와 사건을 엮은 것 말고는 매력 없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살아있는 유기체고 그것을 둘러 싼 주변 인자와 환경을 보면 답이 나온다는 그 궤변 같은 이론이 조금 흥미로웠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감상은 거의 ‘히구라시 타비토 시리즈’와 유사하다.
마땅히 재밌는 게 없으면 완성을 위해 읽겠지만 굳이 찾아 볼 만큼은 아닌, 쉽게 잊어버릴 이야기는 아니어도 다음 이야기가 그리 궁금하지 않는 책이랄까.
모든 시리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다림 없이 한 번에 나오면 좋겠다.
재미 없는 것들은 특히 기다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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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기억을 지워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빨간 마스크나 사람 얼굴을 한 개처럼 도시 전설로 떠도는 정체 불명의 괴인이지만 그리 무섭지 않고 오히려 찾아가 내 기억을 지워달라 요청하고 싶은 존재.
초록색 벤치에 앉아 있으면 다가와 원하는 기억을 지워준다고도 하고,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먹는 거라고도 하고, 회색 코트를 입었다거나 혹은 여자라거나 무수한 소문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도쿄 근교에서 떠도는 구전일 뿐 누구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혹은 모두 잊었거나.

료이치는 어릴 적 이웃 동생인 마키가 하루 만에 충격적인 기억을 잃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매번 어떤 남자와 한 학생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있는 꿈을 꾸며 꼭 도망치라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깬다.
그는 회식에서 만난 선배 교코를 좋아하게 되고 교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걸 알고 도와주려 한다.
집에 데려다주면서 익숙해지게 하며 8시가 되기 전에 꼭 집으로 가는 교코를 늦은 시간에 혼자 가도록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같이 있어도 무섭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기억술사의 이야기를 꺼내던 교코가 본격적으로 기억술사를 찾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얼마 뒤 료이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교코를 만나고 밤길에 대한 무서움과 함께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잊어버린 걸 알게 된다.
얼마 뒤 변호사이자 선배인 다카하라의 강의에서 교코를 떠보기 위해 기억을 잊게 만든 것도 죄가 되는지 기억술사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고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교코에게 체념한다.
며칠 후 단 한 번 만난 다카하라가 휴대폰으로 전화하며 친한 사이인 듯 말을 걸어오는 사실에 료이치는 당황하고 자신이 다카하라를 몇 번 만나 기억술사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고 그 사실을 잊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을 포함해 세 번의 기억술사와 관련된 기억상실을 겪은 료이치는 기억술사를 찾기로 한다.

10여 년 뒤 여고생인 나쓰키에게 이노세라는 신문기자가 접근해 4년 전 빵집에서 일어났던 단체 기억상실 사건에 대해 묻는다.
4년 전 나쓰키가 다니던 중학교 근처 빵집의 점원이 백지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억을 잃었고 그 날 4명의 여학생 또한 부분적인 기억을 잃었으며 그 중 한명이 나쓰키였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나쓰키에게 이노세는 사실 점원은 그 4명 중 한명을 추행했었고 그 사실을 4명끼리는 알고 있었지만 그날 이후 아무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기억술사가 연루된 것이라 말한다.
이노세는 그리고 잠잠했던 기억술사가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4년 전 그날 빵집을 다녀갔던 나쓰키와 소꿉친구인 메이코를 기억술사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억술사를 찾는 일에 협조해 달라 한다.
그리고 친구인 메이코의 결백을 밝히고 지키기 위해 나쓰키는 이노세와 기억술사를 찾기로 한다.

기억술사, 말 그대로 기억을 지워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 단순하다.
기억술사가 누구인가가 이 책의 질문이고 그 답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기억술사를 쫓는 사람과 기억술사를 대치시키며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그보다는 곁가지로 볼 수 있을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과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거기에 현재의 이야기들로 조금씩 상황을 진전해가는 구조다.
애초에 기억술사를 쫓는 것부터가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터무니 없는 상대이니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기억술사는 왜 혹은 어떻게 기억을 지우는가.
왜 기억을 지울까, 료이치와 이노세가 기억술사를 반대하며 열심히 주장하는 의견들에서 이 질문은 수없이 반복된다.
잊혀진 사람들에게 기억술사는 잔인한 존재다.
기억을 지워주는 조건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상처를 벗어날 기회를 박탈한 채 도망치도록 돕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인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실수하는 사람이면서 누군가를 바꿔놓을 권리가 있는지.
아픔으로 기억되기 싫어서 타인의 기억을 지워주길 바라는 다카하라, 전처럼 돌아가고 싶어서 기억을 잃기로 한 마사오, 기억을 잃고도 같은 길로 가버린 리사, 모든 걸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기억을 없애기로 한 마리야.
기억을 잊는다고 무조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때로는 선의가 될 수도 악의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이 결정한 일임에도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너무나 한심하고 후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것을 발판삼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마 전하고자 하는 말이겠지.
포근하고 따뜻한데 은근히 무거운 이야기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니 ‘듀라라라’가 갑자기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이다.
그나저나 시리즈인데 한 편 당 한 명 씩 번역자가 있는 책은 처음 보는 듯하다.
서로 간의 정보 공유가 부족했는지 한 단어에 다른 말을 쓰는 부분은 아쉬운 점.
그래도 읽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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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책 민음사 외국문학 M
E. O. 키로비치 지음, 이윤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4.3
책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피터 파커가 하나의 제안서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꼭 자신을 지명한 듯이 자신이 이 글을 읽을 유일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제안서에는 본인의 이름은 리처드이며 오래 전 그가 얽혔던 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몇 달 전 불현듯 알게 되었고 그 진실을 밝힌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동봉된 원고 샘플에는 리처드가 로라를 만나고 와이더 교수와 어울리게 되었고 그 집에서 일하게 되며 데릭을 알게 된 것, 와이더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와 로라와의 사랑, 질투를 포함한 그 간 본인이 느낀 감정들과 합리적인 의심 등 그 모든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와이더가 살해당한 날 밤까지 담겨 있었다.
로라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와이더와 함께 그의 집에 있다는 의심을 품은 채 리처드가 와이더의 저택으로 향하는 것으로 원고는 끝난다.
나머지 원고를 읽고 싶다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긴 제안서를 보며 피터는 흥행을 예감하고 이 글을 꼭 출판하리라 다짐하며 리처드에게 연락한다.
계속해서 답신이 없어 직접 찾아 간 리처드의 집에서 그가 폐암으로 입원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원고에 대해 전해달라고 말하며 돌아온다.
그리고 며칠 뒤 리처드는 사망하고 남겨진 원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미제로 남은 유명 심리학자 와이더 살인사건, 리처드가 남긴 진실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그렇게 피터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직 기자였던 친구인 존 켈러에게 원고에 대해 말하며 와이더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것을 의뢰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 존은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부터 원고에 등장했던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당시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까지 만나가며 차근차근 사건을 파헤쳐간다.
로라에 대한 의심이 주를 이루며 조사가 이루어지던 차에 존의 여자친구 샘이 이별을 고하고, 그로 인해 존은 흥미를 잃고 사건 당일 로라의 거짓 알리바이, 와이더의 미발표된 책과 로라의 책 서문의 동일함, 데릭의 증언 등을 조합해 정황상 로라가 리차드를 꼬여 내 와이더를 죽이고 와이더의 책 원고를 훔쳤다는 시나리오를 피터에게 주며 사건에서 빠지기로 한다.

몇 개월 뒤 모든 걸 잊어가던 존이 당시 경찰에게 받았던 조사 내용을 돌려주려고 전화하자 전직 경찰인 로이 프리먼은 뜻밖에 범인이 자백을 했고 로라가 아니었다는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존을 만난 뒤 스스로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우연하게 친구가 일하는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가 자신이 알려진 7명 이외에 와이더 역시 죽였다고 말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를 찾아 가 그가 와이더의 실험에 이용되어 정신병원에 갇힌 앙심으로 보복 폭행을 했으며 살인의 의도는 없었고 때리기만 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로이는 그와 다른 한 사람의 증언에서 일치하지 않는 의문을 발견하고 끝내 진실을 밝혀내기로 한다.

“피카소가 범죄소설을 쓴다면 바로 이 작품”이라는 서평에 꽂혀 빌려온 책이었다.
결론은 피카소라고 보기에는 결코 입체적이지 않다.
리처드의 원고를 기반으로 기억이라는 소재를 메인으로 삼은 이야기다.
와이더가 연구하던 기억의 편집은 이 소설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와이더의 연구를 그대로 가져 간 로라를 계속해서 남기고 범인으로 몰아 세우기까지 하면서 그저 매력적인 여자, 둘 중 한 명은 훔친 거겠지 라는 식의 결말을 주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자체적인 기억의 편집은 결국 모두에게 해당되었지만 아무도 그걸 알지 못했고 거기엔 누군가의 음모까진 아니어도 비밀조차 개입되지 않았다.
결국 로라는 그저 미스테리한 인물로 소비된 거고 서로를 오해하게 만든 범인은 제 3자, 그리고 알던 모든 것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 자신이 엮이면서 기억은 부풀려졌고 그 사건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인상이 변질된 것, 그 뿐이었다.
그러니까 심심했고 그러니까 피카소는 아니었다.

소재 자체가 그리 재밌어 보이진 않았지만 2부까지는 흥미진진했는데 와이더의 실험으로 인한 부작용의 방향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바람에 김이 샜다.
추리소설에서 뜬금없이 제 3자의 등장이라니 이건 반칙이다.
이 책이 살인사건의 진실이 아닌 서로가 알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이건 너무한 결말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아쉽다.

그들 모두가 상황을 잘못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창 너머로 진실을 파악하려 했지만 자신들의 집착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그들의 창은 사실 언제나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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