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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에세이는 무엇일까?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저자 임지은 작가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라 말한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산문/
한겨레출판
서울대 나민애 교수는 '에세이는 조금 더 과거의 일 내 안에 깊이 박혀있는 가시를 건드는 글'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에세이 쓰기에는 깊게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를 지키고, 발견하기 위해서 생각의 뿌리를 깊게 탐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민애 교수의 말은 임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쓰는 자세와 일맥상통한다. 이번 산문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또한 '나'에 관한 것과 '당신'에 관한 것 2가지 테마로 싫어하는, 미워하는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얻은 내밀한 그만의 이야기가 이 한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기도 망설여지는 법이다.
좋아하는 마음 안에 싫어하는 마음이, 싫어하는 마음 안에 좋아하는 마음이 존재하기도 하는 양가감정과 모순을 인지하고 있는 우리는 임지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마음으로 도리어 깊어지는 좋아하는 마음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배반하는 용기뿐 아니라 배반 당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부모를 배반하여 부모 너머를 가보려 하기에 동생에게도 자신을 배반하기를 격려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무뎌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각자의 세상을 인정하려는 용기, 배반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용기는 부모 자식 간의 영역만이 아니었다. 이토록 친밀하고 끈끈한 자매라니……
반지하, 이혼, 가난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가는 그런 일상 속에서도 '살아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지치고 열악한 삶에 앞서 엄마는 살아 있다.
엄마의 매일에 기대어 호두는 살아 있다.
내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들은 아름다움에 앞서
살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언제나 앞서는
살아있음은 정말로 아름답다.
사시사철의 슬픔 하면 떠오르는 게 냉장고의 소음이라는 그. 냉기를 위해 많은 열을 내는 냉장고처럼 유능에 가장 관심이 있었고 무능이 가장 두려웠던 그가 '글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시사철 켜져 있어 고장 나기 충분했다는 고백에 마음이 짠해졌다. '작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저자를 얼마나 뒤흔들었는지, 또 저자 스스로 흔들렸는지 알 수 있었다. 글을 써내지 못하는 자신의 신통찮음이 글을 써도 신통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면서도 글을 요구할까 봐 무서웠다는 모순이 요동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음을 고장 난 냉장고의 부활로 알려주는 그의 글재간이 사랑스럽다.
서로를 위하느라 자신을 외면하는 법부터 익혀온 한 가족의 산물이라는 게 자신을 곤두서게 하고 고지식하게 하고 상처받게 한다고 임지은 작가는 밝힌다. 자신을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는 그는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개 호두에게 배운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걸, 머무르는 자리에서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걸.
표지 그림이 인상적인데, 이 이야기와 연결되는 듯하다. 부다페스트의 예술가 산드라 폴리아코프의 작품으로, 꽃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여성의 생동감 넘치는 순간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의 에르메스에 관한 이야기는 명품 아니 지금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한다. 오지 않는 미래를 대비하며 현재의 사람은 버티는 것이고, 미래의 역할은 거기에 있을 따름이라는 현명한 문장이 눈에 박히는 이야기였다.
삶에 무엇을 중심으로 두는지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나무를 지금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이 아닌 씨앗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떠올리며 바라보는 방식으로 지지분한 시간을 지날 수 있다고 말하는 진지함이 좋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산문집으로 임지은 저자와 주변 인물의 삶을 만났다. 싫어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느새 자신을, 가족을,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프고 부끄럽고 두렵더라도 기꺼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헤아리려는 임지은 저자의 수고가 세상의 다양한 시선과 모순 앞에서도 그를 담대하고 꼿꼿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한겨레 하니포터 9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