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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개의 이름 - 정수일 평전
차병직 지음 / 창비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일곱 개의 이름 - 정수일 평전/ 차병직 지음/ 창비
평전을 처음 접해 보았다.
위인전, 전기와는 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훑어보는,
일련의 시간을 즐기지 않지만
<일곱 개의 이름>
정수일 평전 서평단에 도전한 이유는
단연코 '정수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소설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다간 정수일.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반도와 주변국의 정세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1934년에 출생한 그는
근현대사 격동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낸 인물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며
학문적 소양을 쌓아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그의 일생은 옳다 그르다
흑백논리로 판단 내리기 버거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통일 과업의 수단이었던
학업에 심취하여
이를 목적으로 삼는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학문적 업적, 성과를 떠나
학문을 향한 열정과 태도 그 자체로
훌륭한 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
간첩, 국가보안법이 낯설지 않은 터라
간첩으로 체포된 '정수일'에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반도 역사 속 굵직한 산증인들이
그를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의 어떤 면이 가능케한 것일까?
광복과 함께 분단된 비극을 안은
한반도의 역사 안에서
그를 들여다보고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차병직 변호사의 정수일 평전
<일곱 개의 이름>을 집어 든 이유이다.
"피고인을 사형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 11월 28일, 서울지방법원 형사 법정에서
검사 조규형의 구형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지 않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어 진행되었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시점에서 문을 연 이야기는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보여준다.

검사의 구형 후 최후진술에서 피고인 정수일은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면서
"저의 졸고만은 꼭 살려내주십시오"
라고 말하였다.
처분에 관한 선처가 아니라
원고에 대한 간청이라니…
정수일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적확히 드러내주는 대목이었다.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 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격변의 역사를 관통하는 그의 일생은
간첩활동보다는
실크로드학을 기초로 하는 문화교류학을
독립한 학문으로 구축하는 데 집중되었다.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
다섯 개의 국적과 일곱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내
그는 꿋꿋이 학문을 이어나갔다.
정해성, 정수일, 요이타케 슈이치, 정서우이,
무함마드 깐수…
만주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대한민국.
그리고 이집트, 모로코, 레바논, 필리핀, 일본 등등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서양 강대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독립을 지켜보며
자신의 뿌리,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가
눈앞에 그려졌다.
나의 민족은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수일은
'조선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학 입학 전까지 의식 속에 각인된 관념은
독립과 민족에 한정됐다.
… 공부할 수 있는 자유 외의 자유가
절실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와 국가가
그의 정신세계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정서우이는 자신의 선택에서
잘못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차병직의 표현처럼
정수일은 환경에 적응·순응하며
그의 길을 걸어나갔다.
외삼촌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에게
조국과 통일 과업을 향한 충성은
학문에 매진하는 것처럼 당연하였다.
그렇기에 북의 아내 박광숙 씨와 자녀들
그리고 가족과의 이별을 감내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가족사였다.
그리고 남한에서 인연을 맺은
아내 윤순희 씨는
정수일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정수일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일곱 개의 이름>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한 개인의 삶을 톺아보는 데
한국사와 세계사의 한 마디를 관통하여
통찰할 수도 있구나.
학문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지식인과 정치사회인을 감복시킬 수도 있구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정수일 뒤
그림자에 가려진
가족들의 희생과 인내, 사랑이 참으로 깊구나.
시대가 만들어낸 가짜 신분이었지만,
학문(문명교류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포부를 지닌 그였기에
오늘날 우리가 그의 자취를 더듬어가는 것이리라.
부디
이 들과 이 봄, 이 꽃을 아끼어
억세고 굳건히 일어나
보다 넓은 저 광야를 향해
보다 화창한 저 봄 속에서
영원히 영원히
인생의 꽃을 피우기를……
- 들에 핀 봄꽃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