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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찌니주의보/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 정지아 작가의 신작
<찌니주의보>가 떴다!
정지아 특유의 활력 넘치고 훈기 도는 이야기에 시골 할매들의 뻔뻔함이 선사하는 톡 쏘는 매운맛이 첨가되어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소설은 평균 연령이 78세인 시골 수평마을에 도시의 젊은 여성 두 명이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적응기를 담고 있다. 노인뿐인 시골에 젊은 바람(?)을 불어넣어 준 존재였던 성진과 혜진이 윤 선생의 발언으로 한순간에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레즈비언. 그들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도시에서 오지 시골마을로 이사 온, 상처가 있는 그들로서는 낭떠러지로 내몰린 기분이었다.
또 한 번 세상의 비난에서 도망쳐 숨을 것인지, 버틸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두 연인 앞에 펼쳐진 현실은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웠다. 새로 둘이서 쌓기 시작한 공간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절골댁의 외면이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정지아 작가는 70대 후반이 대부분인 오지 시골 마을을 소설의 배경으로, 성적 정체성을 향한 보편적인 사회적 분위기, 인식을 보여주면서도 세대 차이와 지역 차이를 활용해 이 상황을 공감력 있게 품는다.
유교 사회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차별 속에서 성장한 우리네 어머님 아버님이 또다시 끔찍한 차별을 내림하는 폐쇄된 공간에 조그마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흐름에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였다.
누구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다 아는 시골 마을에서 누군가에게는 오지랖, 누군가에게는 선을 넘는 불쾌하고 무례인 그 뻔뻔하고도 빤한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그럴 수 있다 받아들여지는 순간, 숙연해졌다. 참 모진 풍파 속에서도 잘 버텨낸 그분들 한 명 한 명이 선명해졌다. 투박하고 찰진 사투리로 그들이 감내해온 지난한 세월을 들려주는 소리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어찌 보면 다들 사회적 약자로 상처 입은 이들이 얽히고설켜 타인에게 날카로운 칼을 매섭게 휘두르려는 모순을 정지아 작가는 투박하면서도 단순한 삶의 온기로 해결한다. 쫓아내려는 할매들이 찌니들에게 뜨끈하고 맛있는 반찬들을 전하는 온기가 그렇다. 알다가도 모를 할매들의 행동에 헷갈리는 건 찌니(성진과 혜진)뿐이 아니었다.
마을 내 유일한 결혼이주여성으로 외로움을 속으로 삭힌 채 단단하게 살아가는 쑤언을 필두로 닭쟁이 기희, 장씨댁, 절골댁, 윤 선생 등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향연이 이야기의 맛을 살려준다.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은 이들이 합을 맞춰나가는 물결을 타고 이야기는 술술 풀려나간다.
입 짧은 기희가 밥 없이도 할매들이 해준 나물을, 김치를 자꾸 먹는 것처럼, 가족을 멀리 두고 한국으로 떠나와 마음 허한 며느리를 등 떠밀어 친정으로 보내주는 것처럼 <찌니주의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거창하고 커다란 이유가 아닌,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가, 연민이 자리 잡아 서로 손잡아 주고 안아주고 등 토닥여 줄 수 있는 다정한 포용을 품고 햇살처럼 다가온 <찌니주의보>였다.

외로움 조각을 품은 이의 손에 꼭 쥐여주고픈 책,
<찌니주의보>이다. 누구나, 각 장의 제목에 들어간 이 단어, 누구나! 읽으면 따뜻해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