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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ㅣ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호구/ 김민서 저/ 창비
'호구'가 바둑 용어라는 사실을 이 소설로 알았다. 드라마 '미생'처럼 바둑과 함께 인생을 묵직하게 그려낸 소설 『호구』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율의 시선] 김민서 작가의 신작이다.
가난해서 그저 웃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고등학생 '김윤수'의 이야기다. 난쟁이 할아버지와 엄마가 가족 전부인 윤수는 당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변의 어떤 소리, 무슨 행동에도 웃고 또 웃고 미안하다 또 미안하다 되뇐다. 그런 윤수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스토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자신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려고만 해서 무리하며 최선을 다하던 윤수가 돌고 돌아 비로소 '나'에 다다르는 여정이 김민서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기준이 없어 위태롭게 흔들리는 십 대의 혼란과 감정을 담담하지만 예리하게 써내려가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그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건네는 삶의 이정표를 흘려듣지 않고 고민하는 윤수의 단단함이 좋았다. 삶이 고되니 그럴까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삶의 의지가 충만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행위도 목적을 가지는데, 그 최종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삶은 행복한 순간이 많지 않다. 찰나이기에 소중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윤수처럼. 할아버지와 엄마와 단란하게 보냈던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지를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이 뜨거워졌다.

권력과 명예와 돈. 현실적이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힘 있는 것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투영된 학교 교실 안에서 폭력과 욕설로 소모되는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집단, 사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의 무게를 절실히 실감하였다.

윤수, 주온처럼 아무런 잘못 없이도 괴롭힘의 대상이 된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좇다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권이철 패거리처럼 앞장서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고 해도 외면하거나 구경한 반 아이들은 잘못이 없는 걸까. 주온이 유일하게 친구라 여겼던 윤수만이 온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진심으로 온이도, 자신도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갈망했다. "너를 위한 순간을 살아."
"나는 너만 보면 막막 청춘이 된 것 같어.
일찌감치 죽었다고 생각했건만
이제 보니 청춘이란 짜식은
일평생 숨이 붙어있는 갑다."
윤수에게 모든 존재가 되어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윤수는 더 열렬히 삶을 마주한다. 생존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던 이 아이는 상실을 이겨내기 위해 헤매고 방황하는 순간에도 삶의 이유를 찾고자 묻고 또 묻는다. 기어이 자신의 답을 찾고 땅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윤수를 꼭 안아주고 싶다.
인생은 잃고 또 잃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영원히 남아 있는 게 있다.
그건 돈도 아니고 힘도 아니고, 나.
아무것도 되지 못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될 것이다.
『호구』는 삶의 주체로서 자신답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살아가고자, 살고 싶은 우리 모두를 비추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