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라는 돌
김유원 지음 / 한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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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심판이라는 돌/ 김유원 저/ 한끼




청소년 시절에 멋진 운동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땀 흘리며 집중하는 모습에 홀려 농구, 배구 경기를 즐겨 보았다. 그 후에는 딱히 스포츠에 열광하지는 않았다. 올림픽, 월드컵 등 애국심이 고취되는 국제 경기를 보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김유원' 작가의 <불펜의 시간>을 읽고 조금씩 달라졌다. 그 후 야구 관련 소설, 영화들을 접하면서 '야구'라는 팀 경기에 흥미를 느끼고 관람하게 되었다. 이렇게 '야구'의 문을 열어준 김유원 작가가 신작을 출간하였다. 출판사 한끼에서 나온 [심판이라는 돌]이다.


이번에도 역시 야구를 소재로, 기술의 발달로 재개편되어가는 현대산업 사회의 단면을 기발하고 독창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접근하는 소설이다. 점차 기술에 밀려 대체되거나 사라지는 인류의 오늘날을 진정성 넘치는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대결'과 '유튜브', 우리네 현실에서 추린 소재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실감 나게 그려내어 몰입감이 뛰어나다.







'홍시', '멱살'

이 별명들은 181cm에 81kg이 넘는 거구이자 심판 경력 28년 차 박홍식을 가리킨다. 홍식이어서 홍시가 아니라 울보여서 홍시, 경기 중 후배 심판과 선수의 실랑이를 중지하려다 선수의 멱살을 잡는 제스처에 붙은 멱살이다. [심판이라는 돌]은 선수와 심판으로 살아온 야구 인생을 바탕으로 인간 박홍식을 그려내고 있다. 1군에서 선수로 뛰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2군 활동 중 권유로 심판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과 함께 가장이 된 홍식에게는 선택권은 없었다. 그렇게 들어서게 되었지만, 차츰 심판의 무게와 책임을 깨달으면서 나름의 철학을 세우고 최선을 다했다. 홍식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가 고군분투해서 지키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팬들이 만세 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야구의 핵심인 것 같아요."




소설은 평생을 야구에 투자한 심판 박홍식이 되고자 하는 '좋은 심판'의 여정에 변화구를 던진다.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 후 심판의 권위는 희미해졌고, 경기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를 향한 여러 시선을 제시하고 '로봇 심판과 인간 심판의 대결'이라는 화제성 콘텐츠로 화두를 던진다.




"네가 야구를 알아? 기록도 없는 심판 새끼가.

2군으로 꺼져."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은 이 대결을 수락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김유원 작가는 핍진성 있게 담아낸다. 야구에서도, 가정에서도 흔들리기 시작한 홍식의 감정선과 대결을 준비하는 노력과 수고를 지켜보면서 '한 인간이 이토록 치열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무언가'에 관해 생각이 많아졌다. 나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심판으로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 시선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이런 변수들이 쌓여 결국에는 홍식이 대결을 수락하게 된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나약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강인해 보이는 걸까?




소설은 대결을 둘러싼 가족과 야구 관계자들의 반응으로 긴장과 재미를 유지하면서 대결 마지막까지 흡입력 강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페이지터너. 술술 읽히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김유원 작가의 담백 솔직한 문체가 매력적이다. 대결의 결말로 마무리되지 않고 심판의 일상으로 돌아가 홍식이 진심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는 끝맺음이라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빠를 뭐로 보고.

남편을 뭐로 보고.

저 새끼가 심판을 뭐로 보고."




[심판이라는 돌]은 눈여겨보지 않았던 '심판'의 위치와 역할을 지각하게 해준 '야구' 소설이자 인간과 로봇의 대결을 다룬 '사회' 소설이며 권위와 융화의 균형을 잘 짚어낸 '성장' 소설이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심판의 무게를 짊어지고 옹졸한 마음을 다스려 강인해지고자 노력하는 홍식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잠깐의 돌 취급도 견디지 못하는구나, 나는.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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