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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거짓말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2
김하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나만 아는 거짓말/ 김하연 장편소설/ 다산책방
가제본으로 일부 내용만 접했던 [나만 아는 거짓말]은 관계 속 '진실'과 '거짓' 그리고 '비밀'에 대한 농도를 다룬 청소년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단장하고 출간된 본책 [나만 아는 거짓말]은 결이 달랐다. 가제본 이후의 내용이 소설의 주제를 바꿔놓았다.

고전문학 독서 모임 <더 클래식>의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으로 밝혀진 죄(잘못) 자체보다 이후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선택에 무게중심이 쏠렸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내면과 선택에 관한 진지한 접근이 인상적으로 진행되는 작품으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사유하기를 권하고 있다.
모임 운영자 현수가 고심해 적은 다정한 엽서 대신 잘못을 고발하는 편지들이 최애 책들 속에서 발견되는 순간, 파국은 시작되었다. 3여 년의 시간 동안 착실하게 다져온 관계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당혹과 경악 그리고 비난과 분노가 이어지는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비밀이 밝혀지지 않은 유정에게 집중하게 된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책 제목 [나만 아는 거짓말]이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유정의 비밀' 그리고 유정이 밝혀낸 '그날의 진실'이 아닐까. 유정이 겪는 내적 갈등은 극의 주제와 맞물려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친구들의 잘못 그리고 이에 대한 이해와 반응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자신의 비밀을 밝힐지 말지를 고민하는 유정을 따라 관계와 거짓, 잘못 그리고 용서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오늘, 고전문학을 좋아해서 읽고 감상을 나누는 독서모임 <더 클래식> 회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사과'와 '용서'를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고전을 즐겨 읽는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걸 방증한다. 외부 인물에게는 조롱과 비난의 빌미가 되었을지라도 다양한 고전 속 인물들을 들여다본 시간은 분명 독서모임 아이들을 성장시켰다. 인간이 내면에 숨겨진 본능과 욕구를 어떻게 발산하는지, 개인의 욕망이 시대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모할 수 있는지, 악과 선의 경계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등등 인간과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탐독하면서 나름의 답을, 기준을 찾았을 테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인의 정체도 반전이다. 범인을 쫓는 과정이 책을 더 풍성하게 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유정은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범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물론 비밀이 밝혀져 충격을 받은 다른 친구들과는 입장이 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정은 그날 이후 자신의 집착과 충동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정은 잘못했으나 자책하며 후회하면서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정면을 마주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밝혀 친구들과 범인에게도 닫힌 결말이 아닌 열린 결말의 선택지를 보여주었다.

잘못은 인간의 악한 의지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라, 사유의 결여와 환경적 요인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잘못을 그 사람 자체로 인지하기보다는 그 행동의 원인을 들여다보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더 클래식> 회원들이 보여준 변화가 가능성을 열어준다. 잘못을 하더라도 뉘우치고 사과하고 다시 일어나 자신과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김하연 작가가 던진 공이 어디까지 가느냐는 우리 독자의 몫이다. 잘못을 안 하며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평범한 우리가 잘못하고 부서지지 말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며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