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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한겨레출판
글쓰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작가가 세상에 내놓은 흔적 [아뇨, 아무것도]를 읽었다. 15편의 이야기로 덩어리지어 다듬은 작가의 실체는 아직은 흐릿하다. 아리송한 그, 15편의 이야기로는 최제훈 작가에게 다가서기 부족하다. 그래서 갈증이 깊어진다. 그를, 그가 그려내는 기묘한 작품 세계를 좀 더 자주 보고 싶어진다.
<작가의 말>이 작품집 중간에 있다. 작품들을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작가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아마추어'의 어원인 라틴어 아마토렘의 뜻은 lover,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작가가 좋아서 그냥 쓴 이야기들은 그 마음이 묻어있었나 좋았다. 그냥 읽었는데 그냥 좋았다.

작품의 길이가 제각각이다. 짧은 건 1장, 4장, 긴 건 12,3장이다. 분명 이야기의 호흡이 길지 않은데 여운은 길다. 신기하다. 작가가 쓴 마지막 문장이 진짜 끝처럼 다가오지 않아 다음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기웃거리게 된다. 상식을 뒤집는, 신통한 색깔을 품은 이야기들이 위트와 통찰과 사유를 발산한다. 예리하게 꿰뚫는 그의 시선에 헉, 짧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빠져든다. 그래서? 집중하게 만드는 핍진성이 탁월한 소설집이다.

박수 쳐주고 싶은 이야기들 중 특히 널리 소개하고픈 이야기 몇 편이 있다. 제약 없이 간섭 없이 그냥 쓴 이야기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과 숨', '아뇨, 아무것도',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 '후미등'이다. 평범한 일상 속 변주를 특별하게 그려낸 이야기들이다. 의도가 아니라 우연히 한 선택이 이끌어내는 결말이 색다르다. 말하고자 하는 바에 다다르도록 유도하는 이야기 구성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면밀하다. 허를 찌르는 서사에 속수무책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 감정 펀치를 정통으로 맞는다.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에서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글의 결말에 온 힘을 쏟아붓는듯한 최제훈 작가. 마지막에 붙들려 계속 상상하게 된다.

이런 거구나, 물과 하나가 되는 게 ……
생각은 허밍이 되어 사라지고 그 잔잔한 허밍마저 사라진 고요 속에서
재희는 자유를 만끽한다. 물속에서 숨 쉬지 않을 자유를.
물과 숨 中
내 사소한 미래로 어떤 콩트를 썼을까?
보고 싶다, 어떻게든 여기 무사히 빠져나가 기필코 읽어 보고 싶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
아뇨, 아무것도 中
생짜 우연이건 더 높은 차원에서 진행되는 계획의 일부이건 그저 함께 미소 짓는 수밖에.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 中
명치께 실지렁이 한 뭉치가 꿈틀거리는 듯한 이물감.
고개를 돌리다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가 밀림 깊숙이 숨겨진
고대 유물처럼 불가사의해 보였기 때문일까?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 中
'안돼! 돌아와!'
내 침묵에 절교는 타이어 마찰음에 묻혔다.
붉은 후미등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나를 인정 없는 시골길에 남겨 놓은 채.
후미등 中
마지막이 마지막처럼 느껴지지 않는, 활자 너머 이야기가 숨쉬는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가 최제훈. 그와의 첫만남 [아뇨, 아무것도]이 강렬한 인상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