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 번째 여름 (양장) 소설Y
청예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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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일억 번째 여름/ 청예 장편소설/ 창비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은 우리의 무지를 크게 꾸짖는 듯 강력하고 묵직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찬란한 빛 아래 티탄처럼 거대해진 자연 생태계를 마주한 신인류 네오인 두 종족의 생존기가 처절하게 전개된다.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닌 채 태어난 두 종족, 미미족과 두두족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아갔다. 하지만 반복된 여름은 두두족과 미미족의 차이를 심화시켰고 끝내 갈라놓았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행성의 자연과 상관없이 쾌적한 실내에서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는 두두족은 그 에너지를 자연재해로부터 채집하는 임무를 미미족에게 부여하고 식량을 제공하였다. 강인한 체력으로 농경과 노동을 담당했던 미미족은 두두족이 과학기술을 공유하지 않아 원시적인 움집과 두두족이 허가하는 도구만을 사용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이런 관계 또한 고대 선조의 예언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고대 선조가 남긴 ‘두 가지 흔적’을 찾기 위해 신인류 네오인 중 유일한 해독가인 ‘이록’과 미미족의 족장인 ‘주홍’은 콜로나 시찰을 나간다. 일억 번째 여름이 절대 오지 않기를 염원하며.


주홍과 이록, 일록과 연두, 백금과 주홍.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이들은 절실해졌다. 용감하고 가여운 영혼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희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주홍과 두두족 족장 아버지와 미미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고대 언어 해독을 할 수 있냐 없느냐로 그 운명이 결정된 이복형제 일록과 이록 그리고 채집자로 선택된 백금과 연두 모두 ‘쓰임’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게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려 애쓴다. 살아남기 위해 절박한 아이들에게 사는 기쁨을,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전하고자 했다. 진정 살아있다! 소박한 하루가 반복되도록 내버려두어 감각하며 안 심심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어른의 바람은 건조한 세상에 부는 한줄기 바람처럼 아이들의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밤을 겪어보지 못한 낮의 시간이 삶의 전부인 등장인물들에게 어둠꽃, 행성의 뒤통수 구역인 어둠의 세계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예언 속 종말의 상징,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미미족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고단한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그 먹먹한 여정 끝에야 비로소 구인류가 신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청예 작가가 글 곳곳에 심어둔 단서들이 의미가 되어 튀어나왔다. 검은 폭포, 에너지의 정수, 궁극의 원천, 멸망, 멸족 그리고 정체불명의 도형들. 고대 선조의 예언처럼 선량한 지혜가 깃든 종족에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었다. ‘낡은 한 종족의 멸망‘은 사랑과 욕심이 한자리에서 움터 분간할 수 없게 된 이기적인 종족의 멸망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보완하니까."




“우리는 중간값의 산물이니 그 자체로 완벽하단다. 차이 속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으라”는 이록의 어머니 말처럼 결핍되어 있기에 완벽해진다. 같이 있어 비로소 완벽해지는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활짝 피어나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연쇄적인 사랑과 희생, 그 빛이 지금의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힘 있게 반짝거리고 있다. 일억 번째 여름이 지나고서야 새로운 시작을 노래할 수 있었던 이들의 간절함이 우리를 들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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