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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신혜우 지음/ 한겨레출판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신혜우 학자가 다른 나라 낯선 자연의 품 안에서 만난 식물들로 한가득 채워진 1년 12달의 시간이 담긴 에세이다. 새로운 공간, 사람, 자연과 익숙해져가는 시간 속에 그가 관찰한 식물뿐 아니라 삶을 통찰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식물을 긴 시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학자적 자세에서 다른 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설렘, 기쁨과 슬픔을 마주하고 들여다보는 인간적 고뇌까지 진솔하고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잔잔한 사색의 자취를 따라가니 어느새 삶의 소중한 가치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한다.
식물들이 열매 맺고 번식하는 일련의 과정을 관찰하면 미생물, 곰팡이, 작은 곤충들 등 눈에 보이지 않거나 중요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이 좋다 나쁘다, 대단하다 하찮다 하는 판단과 구분은 인간 본위의 얕은 결론일 뿐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면서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하고 있다. 저자 신혜우 학자는 12달 자연에서 만난 경이로운 순간들을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다.

자기반성과 깨달음, 온갖 감정이 기록된 다정한 숲속 일기는 좁은 시야로 입맛대로 선택하여 바라봤던 한정된 세상을 넓혀주었다. 피지 않는 꽃도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고 열매를 맺는다니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눈으로 뒤덮인 대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도 대단하다. 내려오는 동안 질소를 부착하고 토양을 덮어 질소와 수분을 보호하고, 봄에 완전히 녹아내릴 땐 한꺼번에 풍부한 물과 질소로 변해 씨앗이 새싹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다. 신혜우 학자 말처럼 갈수록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 많아지는 듯하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들은 결국 시간이 흘러야 해결된다. 조급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 있다. 눈 내린 풍경이 전하는 위로를 읽은 저자가 우리에게 다시 그 위로를 전한다.
"그냥 계속해.
그러다 보면 막막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
실험실 안에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이야기를 상상했던 나에게 신혜우 작가는 놀라운 시야를 선사해 주었다. 실험실에서 벗어나 숲속을 거닐거나 옥수수밭에서 푸른빛을 발견하여 도깨비 불인가 싶었는데 반딧불이였다거나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식물들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거나 농장에서 다양한 작물들을 농사지어 기부하는 등 다채로운 식물연구원의 삶을 들려주었다.

전공 식물분류학이 아닌 식물생태학으로 논문을 쓸 상황이 아니었을 때 메릴랜드의 자생 난초 그리는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다운 행보가 아닌가. 1년 동안 생애 주기를 관찰하고 그리는데도 1달여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라고 하니, 새삼 책 속 삽화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과 지난한 시간이 담긴 그림인지 알고 보니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물맛 나는 과육을 씹으면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를 먹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
햇빛이 부족하면 식물이 충분한 당분을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물맛은 나와 계절이 하나 되는
묘한 충만감을 준다. (p.106)
하나의 시선으로 찾은 답이 세상 모든 일에 '정답'이 될 수 없다. 수많은 시간을 식물 연구로 보낸 저자조차 낯선 식물들이 많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싶지만, 신혜우 학자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답을 찾아간다. 숲속을 거닐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식물학자 신혜우가 들려주는 낯설지만 친근한 식물 이야기이자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