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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박현수 지음/ 한겨레출판
<경성 맛집 산책>으로 경성 여행을 맛깔나게 인도했던 박현수 교수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달콤한 디저트 세계다. 온갖 이미지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먹거리'에 진심이다. '맛집 로드', '맛집 투어' 등 다채로운 콘텐츠 속에서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먹방, 많이 먹기 내기, 맛집 찾기에서 벗어나 '먹는' 행위의 의미를 쫓고자 하는 박현수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식민지 조선을 풍미했던 디저트 8가지로 그 시대의 일상과 사회 문화, 제도를 살피고 있다.
먼저, 대표 디저트로 선정된 품목은 커피/만주/멜론/호떡/라무네/초콜릿/군고구마/빙수이다.
매년 열리는 커피 엑스포에 갈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이이기에 '커피'를 다룬 첫 장부터 마음을 뺏겼다. '경성 다방 성쇠기' 등 다방 관련 글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에 카페, 다방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쓴 맛이 나는, 맛없는 커피라는 말도 있었지만, 차츰 그 맛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조선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이라 작가는 내비친다. 여러 소설 속에서 커피 맛집과 커피를 마시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여러 다방 중 '카카듀'가 눈에 띄었다. 이경손이 주인이고 현앨리스가 카운터를 지켰던 그곳은 박서련 작가의 [카카듀] 배경으로, 호기심 어린 공간이다.
'만주'는 일본의 화과자로 요즘도 일본에서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갈돕회'를 중심으로 만주를 팔아 학업을 이어가는 고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대 신문과 소설로 1910,20년대의 겨울 만주 행상을 생생하게 소환한다.
"만주노 호야호야!"
만터우, 만두, 만주는 한자 표기가 같다. 같은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음식이 된 역사를 소개해 준다. 나라와 전해진 시대에 따라 다르게 변형되어 이어진 음식들의 이야기는 흥미를 돋운다.
죽어가던 이상이 먹고 싶었던 멜론, 탄산의 톡 쏘는 맛에 빠져드는 청량음료 라무네, '련애사탕'으로 불리고 음료로 즐겼던 초콜릿을 다룬 장들에서 특색 있는 정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수입하여 우리나라에서 개량한 참외가 역으로 일본에 수입되어 '코리안 멜론'으로 불린다고 한다. 일본 품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우리나라 참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하니 묘하다.

조선 최초 탄산음료인 라무네가 맛으로도 인기였지만, 콜레라 같은 전염병 예방에 좋다는 근거 없는 기사 때문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광분>, <유혹>, <고향>, <마인> 등 여러 근대소설에서 초콜릿이 연인의 과자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초콜릿 특유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기인한 것이리라.
호떡, 군고구마, 빙수는 지금도 인기 간식이다.
'호호 불어 호떡'이라 농담조로 애들한테 얘기했지만, 영화 말모이에서 '호'가 오랑캐 호임을 알게 되었다. 박 교수는 식민지 시절 5전으로 먹을 수 있었던 큼지막하고 달큼한 호떡 뒤에 감춰진 우리 민족의 감정을, 부끄러움을 읽어냈다.

군고구마를 다룬 장에서는 김동인의 <감자>를 소환하고 있다. 복녀가 훔친 것은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고구마라고 한다. 이로 인해 소설 <감자>에 관한 해석이 달라지게 되니 흥미롭다.
빙수는 여름철 대표 디저트다. 그런데 '빙수'는 '얼음물'이라 얼음을 곱게 갈아만드는 음식과는 맞지 않다. 작가는 일본의 빙수점 메뉴 변천사를 통해 그 과정을 쫓는다.

대부분의 근대 문물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를 통해 유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국민들이 디저트와 겹쳐졌다. 그리고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드는 환상의 공간이 되어준 다방이나 이국에 대한 동경인 멜론 등은 식민지 조선의 모순과 한계를 보여준다. 겨울에는 군고구마 장사를, 여름에는 빙수 장사를 하는, 거리 위의 행상들이 분주한 모습이 계속 아른거린다.
한겨레 하니포터 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