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법 같은 언어 - 같은 밤을 보낸 사람들에게
고은지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평점 :

마법 같은 언어/ 고은지 지음/ 다산책방
고은지 작가가 어머니를 처음으로 놓아주었던 그 순간에서야 차오르던 감정에 오열하고 말았다. '엄마의 편지' 키워드에 이끌려 신청한 서평단이었다. 예상보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에 감히 작가가 부모의 부재를 짊어진 채 지나온 시간 속 진한 아픔과 한숨을 헤아려 한 시도가 참으로 무모했음을 절절히 느꼈다.

영어, 한국어, 일본어. 세 언어가 교차하는 이야기는 미국과 한국, 일본 세 나라를, 고은지 작가와 부모 그리고 조부모 삼대를 품고 있었다. 작가는 80년대에 태어났지만 이어져 온몸을 타고 흐르는 피는 그에게 수십 년 전의 역사를 되새겨주었다. 부모가 갈망한 그렇지만 그들은 떠난 나라에서 오롯이 살아남은 아이의 버티기에 뿌리가 얼마나 큰 생채기를 냈는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는 '시'를 만나 지독한 고통 속에서 헤어 나와 용서하려는 용기를 내고 놓아주는 사랑의 몸짓을 보여준다. [마법 같은 언어]는 상실과 고통이 새겨지는 언어로 사랑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한 편의 '시' 같다.

닮았다. 사랑스럽다. 씩씩하다. 밝다. 강하다…… 수없이 반복되는 단어들이 부모의 바람과 기대를 넘어 아이를 짓누르는 억압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고은지 작가는 이 편지를 받았을 때는 한글을 잘 몰라 다 읽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제삼자는 모르는 부모 자식 당사자들 간의 끈끈한 유대는 저 편지글 아래에 잠들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관동대학살, 제주 4.3을 가슴에 품은 채 일본에서 한국 제주도로 다시 대전으로 또다시 미국으로 떠나온 구미코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네 역사 속 비극을 관통한 보통 사람을 조명하고 있다. 잊힌,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세대를 이은 근원적 슬픔과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 준, 어머니 영의 이야기도 고은지 작가 내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편지. 49통의 편지만 보관되었다. 영혼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 답을 찾아 이승을 떠도는 날의 수, 우리네 풍습 '49재'처럼 어머니의 편지 49통을 번역하면서 고은지 작가도 답을 찾고자 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편지 전문과 일련의 이야기들로 놓아주는 작업들로 드디어 용서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지도교수가 말한 바처럼 인간 삶의 모든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용서하고 도량을 베푼 것이리라. 그녀 자신에게도. '사랑'을 선택한 고은지 작가에게 어머니의 편지는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어머니를 데려와 거듭거듭 어머니의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 사랑을 담아 '같은 밤을 보낸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언어]를 부쳤다. 그들도 상실과 고통을 사랑으로 이겨낼 '마법' 같은 무언가를 찾기 바라는 응원이 전해졌다.
"저희 할머니들은,
저는 그분들 인생이 축적된 존재예요.
제가 지금 하는 말이나 행동이
과거를,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어요.
저는 그분들이 영영 사라졌다고 여기지 않아요.
제 부모님이 제게 행복을 주시진 않았어요.
하지만 저를 놓아주셨어요. 제게 자유를 주셨죠."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