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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10월
평점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바람의아이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년이면 사람도 태어나 성년이 되는 길다면 긴 세월이다. 그 시간 내내 사랑받는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제 열여섯!
너무 짧은 시간을 살다간 소년 황재준의 죽음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절친 진유미가 읽기 시작한다, 그의 파란 일기장을. 마치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첫 장에 쓴 문장에 마음이 무너지고 온몸이 떨린다.
솔직히 이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리고 쓰라렸는지 모른다. 혹시나? 싶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웠다. 쉽사리 일기장을 펼쳐 읽지 못하는 유미가 이해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그 죽음에 자신은 미처 몰랐던 비밀이 있을까 봐 두려웠으리라. 재준이 날아올라 추락해 부서졌던 그 시간에 자기가 보냈던 문자처럼 살피지 못한 아픔을 마주할까 봐 무서웠으리라.
밤이 깊어도 죽음은 오지 않네
흐르는 강물에 청춘을 내던져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아침이 와도 죽음은 가지 않네
눈 쌓인 산 위에서 청춘을 포획하라
오늘 그대는 살았는가
내일 그대는 살았는가
할말은 하는 유미와 수줍음 많은 재준이가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에서부터 불의의 사고로 사라진 재준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까지 이경혜 작가는 한결같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공통분모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두 아이를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 가깝게 배치하여 묶어주었다. 같은 반이자 서로의 집이 가까워 같은 길로 등하교를 하면서 애타는 짝사랑을 하는 아이들.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꿈을 응원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과 어른의 시선보다 본인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갑자기 찾아온 재준의 죽음은 유미와 주변을 흔들어놓았다. 죽음을 걱정할 나이가 아니기에 유미도, 재준도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을 것이다. 재준의 일기장에는 평소 즐겨한 '죽은 영혼의 놀이'에 관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엄격한 아버지와 아프고 연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 시들어가는 그 아이의 영혼이 안타까웠다. 죽음을 놀이화하면서 현실의 소중함을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듯 해서 가슴이 저리고 시렸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눈에 밟히는 이야기였다. 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약하고 잘 다쳐서 도리어 눈치를 살피게 하거나, 자유롭게 풀어주어 결정권을 주지만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안겨주거나, 무엇이든 간섭하고 아이들을 차별하고 편견이 심하다. 하지만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이 아니고,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무심한 듯 싶으면서도 마음으로 아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어른들도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을 한결같은 눈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그들이 있어 아이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키우며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들어간 제목의 소설책 표지가 아련하고 싱그럽다. 바람결을 타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이 도드라지는 질감에 손끝이 머문다. 파란 일기장을 든 유미와 디지털카메라를 든 재준이가 떨어져 있어 눈으로 그 거리를 가늠한다. 부디 갑작스러운 죽음 끝에 찾아온 허망함의 구멍이 차차 메워지기를 바라며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의 죽음은 서글픈 아픔이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오늘을 충만하게 찬란하게 느끼며 살기를 말해준다. 사랑을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변하고자 한걸음 나아간 열정적인 소년 재준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