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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ㅣ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평점 :
부끄러움의 시대/ 장은진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부끄러움' 밑으로 가지를 뻗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공감 어린 서사로 풀어내고 있는 장은진 작가의 [부끄러움의 시대]
전반적인 분위기는 잔잔하고 고요한 데, 일어나는 사건들은 해일처럼 주변을 다 휩쓸어버리는, 모순적인 작품이다. 세상을 멈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한해네 가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버티는 삶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인 폭력과 멸시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진실한 삶의 자세가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부끄러움 때문에 '유령'으로 살아가고 싶은 아버지 '강정식' 씨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어머니 '문희숙' 씨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결혼 3년 차에 이혼하고 돌아온 딸 '강노라' 씨와 우산 공예가로 이솔우산 주인인 아들 '강한해' 씨.
이 가족이 견뎌낸 '부끄러움의 시대'는 우리 사회가 되풀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시간들이라 더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한해네 가족처럼, 이봐요 씨처럼 견뎌내고 버텨내면서 힘을 키워 부끄러워야 함이 마땅한, 사과해야 함이 마땅한, 책임져야 함이 마땅한 이를 무찌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많아지리라.
희망을 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차가워진 바람으로 답하고, 겨울을 부르는 가을의 손짓에 언제나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상실 후 내 안의 시간과는 상관없이 바깥의 시간은 흐르기에, 조금만 눈을 들어 주변의 시간을, 계절을 교감할 수 있다면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리쬐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수제 우산'과 '호텔 청소'
친근한 소재가 아니라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일터에서 '유령'으로 존재해야 하는 '청소부'의 현실을 한 번 더 비틀어 자기 스스로 '유령'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삶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골격이 되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유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호텔 청소부가 되어 오히려 귀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대를 이어 엮어지면서 또다시 삶은 계속되었다.
무언가를 귀히 여기고 시간과 마음을 쏟아붓고 아름다움을 찾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나서 좋았다. 호텔 청소부로서의, 수제 우산 공예가로서의 자긍심이 넘쳐흘러서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세가 삶 전반에 녹아 스며들어있었다. 부모님, 스승님 세대를 이어가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유연한 한해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분명 그를 잇는 다음 세대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그게 꼭 손 같았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손.
그때는 그것도 힘이 됐어. 그래서 난 우산 손잡이가 좋아.
우산을 만든다기보다 누군가 잡을 손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해보고 싶어졌어.
시대의 부끄러움은 다양한 낯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상대방에게, 세상에게 책임을 돌리는 파렴치다. 사과가 없는, 책임이 없는 세상의 모든 폭력과 멸시와 인재들은 소설 속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생은 견디고 버티는 것'이라는 말 끝에 '정의'가, '사과'가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부끄러움의 시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해도, 노라도, 이봐요 씨도 떠나간 이들이 남겨준 추억들을 아픈 조각까지 잊지 않고 곁에 둔다. 그리고 우산을 씌워준다. 서서히 변하리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