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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5
황모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9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30/pimg_7258792674478589.jpg)
언더 더 독/ 황모과 지음/ 현대문학/ 핀시리즈 005
명치를 정통으로 맞은 듯 강한 충격을 선사한 황모과 작가의 [언더 더 독]
유전자 편집이 상용화된 미래는 편집인과 비-편집인으로 철저히 구분되는 사회이다. 경제력으로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 차이는 비-편집아들의 내일을 끝없이 없는 수렁으로 이끈다. 황모과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과 인간에 관한 성찰로 '삶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능력이 곧 신분이 되는 사회에서 비-편집인 한정민이 죽을 이유를 아니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여정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그 서사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다 보면 한정민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비-편집인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 이하로 살아가면서 내릴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 기회라 여겼던 선택들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예견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경악과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선생님의 마지막 순간을 인류를 위해
쓰게 해주십시오."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은 비-편집인과는 반대의 이유로 다운그레이드 된다. 인간을 능가하는 그들이 세상에 인간이라는 종을 불필요하다고 여겨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장치와 인공지능에 결핍을 설정하게 만들었다. 장치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인간, 그 인간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한정민은 다운그레이드 된 장치들과 교류한다. 이 시간은 정민이 삶의 존엄을 깨우치게 되는 겸허한 경험이었다.
인간과 기계는 양극단이 아니었다.
두 개의 점이라고만 생각했던 사이에
수많은 지점이 있었다. 인간들이 그러하듯.
다른 종들이 그러하듯.
나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조차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편집인이라는 세상이 씌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다운그레이드 한 그는 자신이 인간 이하가 아니라 기계 이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우열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고 겸허해졌다.
비-편집아 한정민은 스스로 사육장 철창 안으로 걸어들어가 죽음을 갈망할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되고 나서 연구소에 자신을 일임한다. 그곳에서 더티 워크 작업을 수행하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것이라 여긴 그에게 세상은 바닥 아래 심연을 열어 보였다. 그렇게 그는 활짝 열린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사육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모과 작가는 마지막까지 이름이 없는 비-편집인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서로 관계 맺어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인간 한정민이 편집인, 비-편집인 원을 뛰어넘어 기억 속 가족(진짜 가족이든 환상 속 가족이든)으로 인지한 현실의 타인과 함께 일어서려는 결의를 보여준다. 비로소 삶다운 삶, 존엄한 삶을 향해 내딛는 힘겨운 발걸음이 또다시 세상의 개입으로 방해받지만, 또 다른 공간과 만남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을 학습한 다운그레이드 당한 장치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멈춤을, 소멸을 선택했다. 편집인을 대변하는 노아는 이들의 고귀한 선택을 조롱하지만, 정민은 새로 만난 노인과 함께 꽃을 올리며 추모한다. 명령을 내리는 자와 명령을 수행하는 자인 듯했지만, 결국 노아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타협하고 조율하고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이 대목이 씁쓸하고 서글프고 아찔하게 다가왔다.
디스토피아, 좌절과 포기로 점철된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에게 우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잔인하게 짓밟혔지만 돌고 돌아 살아남았다. 소멸 대신 노파의 이야기를 듣고자 마음먹은 정민의 남은 시간이 궁금해진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30/pimg_7258792674478590.jpg)
인간, 존엄, 삶,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나름의 답안을 찾아가는 소설 [언더 더 독]이었다. 자신을 버렸던 한 인간이 다른 존재를 구원하고자 손을 내밀게 되고, 살아남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오늘을 맞이하였다. SF 형태로 존엄한 삶과 인간성을 그려낸 [언더 더 독], 그 깊이 있는 통찰을 추앙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