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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해학 - 인문학 그래픽 노블
폴 브리지.가에탕 브리지 지음, 이세진 옮김, 오느레 드 발자크 원작 / 학고재 / 2024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23/pimg_7258792674471172.jpg)
발자크의 해학/ 오노레 드 발자크 원저/ 폴&가에탕 브리지/ 학고재
웃음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잖소.
그냥 즐겨주시오! 내 사랑들이여,
편안한 몸으로 즐겁게 사용하시오!
『고리오 영감』으로 친숙한 오노레 드 발자크가 쓴 『해학 이야기 100』 중 4편의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로 각색되었다.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스케치로 재탄생한 『발자크의 해학』은 원작의 결말이나 전개가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 염려에 두고 읽더라도 19세기에 쓰인 발자크 특유의 풍자가 21세기 현대인이 즐기기에 충분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는 존경하는 프랑수아 라블레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한,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30편까지 집필하고 중단된 『해학 이야기 100』 중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선택을 받은 작품은 <미녀 앵페리아>, <가벼운 죄>, <악마의 상속자>, <원수 부인> 4편이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d/k/dkdtlksu/AqABCL0k1mmJaKHs.jpeg)
이야기 시작 전 발자크가 등장하여 호흡을 환기시킨다. 호탕한 발자크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발자크를, 작품을, 19세기 프랑스 분위기를 짧으면서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페이지의 힘이란 놀랍다.
'앵페리아'는 발자크 원작 『해학 이야기』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미녀 앵페리아>와 <결혼한 앵페리아> 두 편을 합쳐 각색된 <미녀 앵페리아>가 폴과 가에탕 브리지가 선보이는 첫 번째 이야기다.
공의회 참석차 콘스탄츠에 온 수도사 필리프 드 말라는 앵페리아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후 홀린 듯 빠져든다. 수도사로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그는 세치의 혀로 현혹하는 자에게 이끌려 앵페리아와의 만남을 계속하게 되는데…….
순진한 청년 필리프와 농염한 앵페리아의 극적인 대비와 함께 고위층 성직자들의 부끄러운 민낯의 대향연이 눈길을 끈다. 수도사 필리프의 순수한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의 해프닝은 다 그의 새파란 용기 덕분이었다. 인간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악한 존재에게 퉁명하게 안녕을 고하는 그와 그의 부인에게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소박한 미래에 관한 담소를 나누며 고향 투르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이제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가벼운 죄>와 <원수 부인>은 남녀 간의 정에 관해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열정적인 그들의 사랑 앞에 죄와 구원, 남편의 복수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침없는 전개와 반전 그리고 사실적인 그림체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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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여겨본 작품은 <악마의 상속자>다. <미녀 앵페리아>에서 출연한 '우연'씨(악마)가 재출연하고 있다. 유산만을 바라고 아버지의 죽을 날만 학수고대하는 두 아들과는 다르게 외삼촌을 잘 보살피는 우직한 조카 시콩이 주인공이다.
양치기 시콩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좋은 순진한 사나이다. 하지만 '모생주(못된 원숭이)', '피유그뤼(도둑 두루미)라 불리는 코슈그뤼 형제는 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그를 제거할 끔찍한 계획마저 세우는데…….
인간의 탐욕과 악마의 유혹이 만나 펑펑 터졌다. 인간의 검은 속내가 악마의 속삭임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자신이 말한 대로 맞이한 결말, 당하는 자가 다를 뿐인 잔혹한 끝을 이끌어낸 악마 그리고 악마의 상속자였다.
"사랑하는 양들아, 너희는 무슨 죄를, 무슨 회개를,
무슨 속죄를 말하는 것이냐?
보아라! 너희는 가련한 피조물에 불과하거늘!
온종일 밭과 농장에서 죽어라 일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자들아, 어떠냐?
너희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느냐?
아, 그렇고말고! 너희는 그저 피땀 흘려 수고하려고
이 땅에 태어났느냐? 하찮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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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과 허세를 벗어던진 날것 그대로의 글과 그림으로 인간이 지니는 욕망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 작품집이었다. 놀라고 웃고 궁금해하면서 즐기는 사이에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다.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던 발자크의 발칙한 프로젝트 『해학 이야기』 덕분에 탄생한 『발자크의 해학』이 발자크의 묻힌 작품 하지만, 그가 애정해 마지않은 작품에 숨을 불어넣었다.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손길이 더해져 감각적인 그래픽 노블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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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건네는 치료 약 『발자크의 해학』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억압과 시선을 벗어나 익살의 광장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 옮긴이 이세진의 친절하고 상세한 작품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d/k/dkdtlksu/QRSV2eIpezOHs0pA.jpeg)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