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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화성의 아이/ 김성중 저/ 문학동네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서는 '연결'의 순간을 빚어내는 이야기, 바로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다.
챕터마다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조각을 조합하여 전체 그림을 완성해나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방향과 틀이 각 인물의 기억에 의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예상과는 다른 전개로 <화성의 아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한 사유를 격려한다.
책 속 첫 번째 화자는 화성으로 쏟아 보낸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 중 유일하게 생존한 '루'다. 루가 유령 개 '라이카'와 탐사로봇 '데이모스'를 만나 척박하고 황량한 화성에서 적응해가는 이야기에 빠져 있었는데, 루가 죽었다. '화성의 아이'는 루의 딸 마야였던 것. 삼백 년 동안 엄마 자궁안에 있었던 마야는 출생 비화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라이카가 루가 암컷이며 임신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 데이모스가 루가 화성에서 마야를 낳고 마야가 먹고 섭취할 세계의 일부를 실어 나르는 존재, '캐리어 백'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예상했던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라이카가 딸처럼 아꼈던 루, 미소가 아름다웠던 루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마야에게로 이어져 사랑스러운 아이로 성장하였다. 마야가 화성에서 자라나는 시간은 우리에게 화성을 감각하게 만든다. 지성 넘치는 라이카와 마음을 가진 데이모스와 사랑스러운 마야가 거니는 화성 언덕을 같이 걷는 듯하다.
마야의 출생과 함께 화성의 테라포밍이 시작되었다. 루의 무덤에서 초록색 식물이 태어난 것을 기점으로, 데이모스는 마야를 위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분투한다. 물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펼쳐지는 테라포밍은 루와 마야와 라이카와 데이모스의 '연결'이다. 마야의 지성과 환상은 루에게 기인했고, 라이카와 데이모스는 루의 딸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화성에서 그들만의 '그릇'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행보가 유독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건 '연결'이 내포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애정'이라는 말을 알았고,
'그리움'이라는 말도 알았다.
그것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행위였다.
루 - 마야 - 라이카 - 데이모스에 이어 '키나'가 화자로 등장한다. 지구에서의 끔찍한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고자 금성으로 향했지만, 결국에는 화성에 버려진 눈꺼풀이 없는 지구인 소녀이다. 유령 개와 탐사로봇의 돌봄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실험동물인 마야가 비슷한 연령의 인간 키나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친구, 나의 연인, 영원한 붉은 별 키나.
상처와 상실로 고통받은 영혼들이 한 공간에 머물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갑자기 '남자'의 등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리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원한다…… 무엇을?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장아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액자식 구성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단순하게 풀어내지 않고 여지를 남기고 교차하면서 긴장을 유발하거나 반전을 이끌어낸다. <화성의 아이>도 인물들의 이야기 전부를 다 들어야 단추들을 제자리에 꿸 수 있다. 미래 지구의 암울한 사회, 무너지지 않을 자본주의, 끝없는 실험으로 키메라를 만들어내는 과학자, 자신을 신이라 믿는 실험체까지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유기적이고 복잡한 세계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표면 아래 흐르고 있는 끈끈한 유대와 사랑 그리고 연결을 향한 목마름을 느낄 수 있다.

SF 장르에 언어적 유희와 신화, 샤머니즘 그리고 과학자의 만용이 버무려진 <화성의 아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차원마저 넘어서는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이고 끈끈한 그들의 연결은 그들이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모처럼 일광이 좋은 날인 데다 노른자가 터지자
태양이 터지기라도 한 듯 풍요로운 흥분이
우주선 안에 떠다녔다.
김성중 작가의 아름답고 다정한 문장 덕분에 더없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선택한 마지막 화자에게 특별히 더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 여기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