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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완벽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다산책방
"피치, 지독하게 멍청하고 지독하게 오만했던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나?"
"할 수 있지. 용서하네."
[완전한 구원]의 저자는 에단 호크다.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영화배우로 친숙한 그가 연기뿐만이 아니라 각본으로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풋풋한 미소로 사랑을 전하던 청년 제시에서 언어의 마술사 셰익스피어 극본을 적절히 녹여내어 허영심 많고 자기중심적인 영화배우로 돌아왔다. 연기자가 아닌 작가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에단 호크의 또 다른 매력을 즐겨보자.
몇 편의 영화를 찍은, 얼굴이 알려진 삼십 대 초반의 영화배우 윌리엄.
그의 아내는 록스타 메리다. 그녀를 두고 불륜을 저지른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소설은 윌리엄이 셰익스피어 연극 <헨리 4세>를 준비하고 공연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헨리 4세> 등장인물 중 '훗스퍼'를 연기한다. 윌리엄은 연극을 연습하고 공연에 열중하는 가운데 아내 메리와 두 아이들과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자기애가 충만한 모습을 초반에 보여준다.
윌리엄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그가 겪는 심리적 압박과 일탈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예전에 겪은 상실과 상처들을 통해 그가 메리와 이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자신의 놀라운 아이들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아내 메리를 향한 사랑 등 그의 개인적인 사정은 연극하는 내내 그를 뒤흔든다.
긴 시간에 걸쳐 <헨리 4세> 연극을 같이 준비하고 공연을 하면서 배우들, 제작자, 연출자와 관계를 쌓아간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로서 역할에 대한 책임감과 연극에 대한 기대 그리고 선배 배우들을 향한 경외심이 그를 점점 더 <헨리 4세>에 빠져들게 만든다. 열중하면서도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방탕한 생활을 해나가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주여, 제게 평화를 허락하소서, 나중에.
저는 사랑받고 싶습니다.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주여, 제게 흑사병을 허락하소서.
윌리엄은 이 인극을 계기로 가족들과의 관계도 재정비하고 배우로서의 자질과 능력도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을 보인다. 대중적인 인기를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관심과 요구에 상처받는 섬세한 영혼은 불안정한 현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믿음과 바람과는 다르게 배우로서도, 남편이자 아빠로서도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하다.
에단 호크는 윌리엄의 위태로운 현실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본업이 배우인 그가 보여주는 연극 무대 뒤의 현장과 호흡은 생동감 넘친다. 배우들끼리의 미묘한 대치와 긴장 그리고 동료를 향한 응원과 격려, 현실과 연기의 모호한 경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연극 한편을 긴 프레임에 걸쳐 제작부터 공연까지 함께 완주하는 듯하다.
"정말 이상해. 지난 세월 내내 네 아버지와 싸우면서 미워하고,
돈 때문에 다투고,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며 살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네가
나한테 가장 많은 고통을 준 그 사람처럼 변해가는 걸 지켜봐야 한다니!
언젠가 너도 네 딸이랑 이야기하다가 그 아이의 머릿속에 메리의 시선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지금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야. 그 무엇도 끝이 아니야.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고.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라는 것."
윌리엄은 훗스퍼가 되어 격정적인 연기를 펼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츰 성숙해지게 된다. 과거 상처가 되었던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공연팀으로부터 들은 조언들을 바탕으로 배우로서, 아빠로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찾아가게 된다.
뚜벅뚜벅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 앞에 보이는 것은 새로 뻗은 계단뿐이다. 사람의 발이 만들어놓은 길이 보이지 않은 새로운 길. 윌리엄이 당당히 밟고 다져놓을 그 길이 보인다.
실제 현실만큼 신나는 건 하나도 없어.
이다음 순간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훌륭하진 않아.
지금 이 순간.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은 불멸이야.
'사느냐 죽느냐'는 ……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겠는가를 묻는 거지.
에단 호크는 '모든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되었다'는 연출자 J.C.의 글처럼 아름다운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그만의 사랑스러운 문학을 완성하였다. 적절한 인용문이 글의 맛과 의도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찬란한 인생을 그려나가는 이들을 향한 그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진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