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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ㅣ 여성 인물 도서관 9
강민경 지음, 화요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8월
평점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강민경 글/ 화요 그림/
청어람주니어/ 여성 인물 도서관9
'최초'라는 낱말이 지니는 무게를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바로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의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이다. 이 기획은 역사의 책갈피 속에 숨어 있는 여성들을 찾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에 출간된 아홉 번째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이다.
바로 가족법을 개정하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법조인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였다. 그녀가 어떻게 변호사를 꿈꾸게 되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크나큰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최초의 여성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크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이 말만으로 이태영 변호사의 일생을 표현하기에는 매우 부족하였다. 한국의 여성들이 즐겁게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여성과 어린이 등 약자들의 편에 서서 평등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 삶이었다. 그의 또랑또랑한 웅변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여성 인물 도서관> 아홉 번째 책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이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이태영 변호사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유교사상을 중시하던 시대라 여성들의 지위가 낮았던 당시에 '여성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남녀 차별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를 준 어머니 덕분에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한 그녀에게 큰오빠가 해준 이 말 덕분에 변호사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태영이는 변호사가 되거라.
변호사가 되면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고
나라를 위해 큰일도 할 수 있지.
우리 태영이한테는 변호사가 잘 어울린다."
공부에 대한 열정은 넘쳤으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그녀는 조급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힘으로 공부를 이어가고자 교사 일을 하기도 하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화여자전문학교를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그녀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목사 정일형과 결혼한 이태영 변호사는 공부는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가족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낮에는 학교 교무주임으로, 밤에는 누비이불 장수로 열심히 일하였다. 강한 정신력으로 시련을 견뎌내는, 이겨내는 그녀를 보면서 울컥하였다.
"평생 할 고생, 한꺼번에 해치우고 말 테다!
고생아, 올 테면 얼마든지 와 봐라!"
그렇게 고생하던 그녀에게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남편 일형이 해방 후 중앙 정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남편 일형의 편지는 그간의 우리 민족의 설움과 고생을 그리고 지금의 기쁨과 환희를 잘 드러내고 있어서 큰 감동을 주었다.
"서울 거리에서 팔을 휘젓고 다녀도
아무도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여보, 이제 보따리를 바꿔 멥시다.
이제 내가 당신의 평생소원인 법률 공부를
뒷바라지하겠으니, 얼른 서울로 와요. "
남편의 든든한 지원으로 이태영 변호사는 넷째 아이를 임신한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법학과 최초 여학생이 되었고, 고등 고시에 합격하여 최초 여성 법조인이 되었다. 여성 법조인이 되는 여정으로도 큰 울림을 준 이태영 변호사는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관습과 법을 고치기 위해 절대 쓰러지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불꽃같은 열정을 보여주었다.
지식인이자 법을 다루는 법조인조차 불공평한 법을 묵인하고 변화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목소리를 높이던 시대에 이태영 변호사는 불공평한 가족법을 개정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점차 그녀의 곁에는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이게 되었다.
억울한 여성의 사정을 들어주고자 시작한 여성 법률상담소가 가정 법률상담소로 바뀌었다. 여성의 손으로, 여성을 위해 건물을 올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여성백인회관'으로 이어졌다.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상금 전액을 기부하고, 아침마다 벽돌 공장에 가서 좋은 벽돌을 손수 고를 정도로 여성백인회관에 애정을 쏟았다.
"나는 청소부라도 좋으니 이 여성백인회관에서
오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을 통해 이제는 폐지되어 사라진 '호주제'를 비롯한 여성차별적인 법과 관습, 사회적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유교 사상을 따르던 시기,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딸보다 아들이 집안의 주인으로 인정받고 대접받는 게 당연하다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던 가족법. 하지만 법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고, 가족 내에서도 사회에서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이, 바로 이태영 변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투지로 점차 사람들의 인식이 깨어나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가족법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생각과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태영 변호사.
그 변화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끌 거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단단한 마음을 이어가는 그녀의 여정은 '행동하는 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 덕분에 여성 인권과 양성평등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관련 법도 제정되었다. 남녀 고용 평등법,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 기본법 등 여성 관련 법의 역사들이 [한눈에 살펴보기] 꼭지를 통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때 그 사건], [인물 키워드] 꼭지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과 호주제 폐지, 법조인 등 관련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이번에도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독후 활동지를 활용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도서를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독서 전/중/후 활동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인물 관계도, 낱말 퍼즐, 독서 퀴즈, 토의·토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의·토론> 활동지 중
Q. 어떤 일을 꼭 잘해야 한다고 부담을 가지다가 오히려 결과를 망치거나 일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요? 휴즈 판사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자신의 경험을 쓰고, 친구들과 이야기해 봅시다.
즐겁게 해야 한다는 뜻이지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이 질문이 눈에 띄었다. 가정일과 사회일 모두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던 이태영 변호사는 미국에 유학 가서 만난 휴즈 판사의 이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일 처리가 간결해질 것이기에, 이런 생각의 전환이 중요할 것이다.
늦은 나이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불공평한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자 세상의 닫힌 귀와 막힌 벽을 뚫고자 열심히 두드린 이태영 변호사의 행보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걷는 양성평등의 길이 넓어졌다. 그 아름답고도 뜨거운 활약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으로 지금 당장 만나볼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