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자의 하인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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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자의 하인/ 강지영/ 자음과모음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엘자처럼 강지영 작가의 [엘자의 하인]이 다시 돌아왔다. 감각적인 표지는 왕국의 여왕 엘자와 그를 사랑하든 추종하든 미워하든 시기하든 시선을 주는 인물들의 관계가 잘 드러나있다. 


[엘자의 하인]에서 이제 막 몸의 변화를 시작하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소년의 세계에 아주 잠깐 머물렀지만 모든 것을 점령했던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고혹스럽게 펼쳐진다. 


[엘자의 하인], 독특한 제목이라 생각이 들었다. '엘자'와 '하인'이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절묘했다. '엘자의 하인'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이면서 엘자와 하인의 관계에 대해 잘 드러내주는 표현 같았다. 하인은 엘자를 사랑하고 엘자를 경외하고 엘자에게 종속되었다. 

소년과 소녀, 마을의 순진한 소년과 도시의 아픈 소녀의 첫사랑, 이런 구조와 감정 흐름 때문인지 <소나기>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운 기분을 느끼게도 해주었다. 






[엘자의 하인]은 이성에 눈을 떠가는 아이들의 시선뿐 아니라, 다채로운 마을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여 옅어져가는 시골 정취와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소설이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 집안일을 하는 아빠와 바깥일을 하는 엄마를 둔 '양하인'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어린 시절의 짧은 만남은 다양한 사랑을 품은 우리네 삶을 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한 살씩 젊어지는 약은 없냐?

그런 약이 있으면 다음 달엔 내가

니 애비 대신 살림도 하고,

또 다음 달엔 우리 하인이 동무도 해줄 수 있고,

봄이 오면 아장아장 걷다,

여름쯤엔 싹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




파주의 작은 마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이웃들이 모여사는 곳에 나타난 백인 혼혈 모녀는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평범하지 않은 엘자의 외모와 차림은 하인과 종선 등 마을 소년들의 관심을 끌었고, 엘자의 어머니 스텔라를 향해 마을 남정네들의 연정이 잇달았다. 


엘자와 스텔라 모녀를 둘러싼 마을 남자들의 관심 외에도 엘자와 마을 천재 수동이 형, 외할머니와 아빠, 컴온의 무덤 등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단조롭지 않게 한다. 의뭉스러운 존재인 수동이 형이 들려준 '피의 마녀, 바토리 스토리'는 엘자를 한층 더 복잡하고 독특한 존재로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아빠와 외할머니가 묵은 애증을 풀고 화해하기까지 하인이네 가족이 겪은 그 모든 것들이 평온하게 떠난 할머니의 표정으로 풀어진다.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부터 사소한 실수까지 입체적인 인물들이 들려주는 삶의 상처, 고통, 기쁨, 행복들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분단국가로서 겪은 전쟁의 아픔, 아빠와 엄마의 결혼에 얽힌 진실, 마을 천년회의 만행, 엮인 이들의 사고로 마녀로 오해받는 엘자, 사기, 화재, 의식, 컴온의 죽음 등등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은 엘자와 하인과 그 친구들을 한층 더 성장시킨다. 



"행복한 건 엄마지, 내가 아니잖아.

니들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인이 엘자와 비록 어린 시절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고서도 다시금 그의 명령에 따라 만나러 갈 만큼 그 추억은 강렬하고도 선명했다. [엘자의 하인]을 읽은 나에게도 각인되었다. 그러기에 엘자를 만나러 가는 하인을 지켜보고 있다.






<살인자의 쇼핑목록> <살인자의 쇼핑몰> <심여사는 킬러>로 먼저 만난 강지영 작가의 초기작 [엘자의 하인]은 또 다른 감성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구수한 사투리와 정감 어린 마을 이웃들 속에서 외지인으로 받는 과한 관심과 오해가 아직은 어리고 유전병 '포피리아'로 힘겨운 엘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새삼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여왕의 귀환으로 술렁이는 하인과 그 친구들을 보니 엘자와 하인의 만남이 기대된다. 강지영 소설의 세계는 형형색색으로,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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