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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관들에게
연마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3월
평점 :
떠나가는 관들에게/ 연마노 SF 소설집/ 황금가지
연마노 SF 소설집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표지처럼 몽글한 감정을 가득 품고 있다. SF 소설로 오늘날이 배경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이야기 소재로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일 중에 여덟 가지를 이야기로 엮어냈다.
여덟 가지 단편 모두 특색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다정하다. 삶과 생명,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단단하게 다져진 대지에 뿌리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나무의 줄기같다. 연약해보이지만 태양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생명력이, 밝음이 우리를 기분좋게 한다. 연마노의 글은 건조한 대지에 내리는 비처럼 촉촉하고, 습하고 뿌연 도시를 비추는 태양처럼 보송하고, 어둡고 냄새나는 골목길을 걷다 마주치는 환한 가로등마냥 안도하게 하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집마냥 편안하게 한다.
참신한 소재와 발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글은 마음에 스며드는 결말로 자연스레 우리를 동화로 이끈다.
한 줌의 희망을 품고 우주로 아픈 딸 인서를 보내고자 하는 서진을, 먼저 떠나보낸 연인을 만나기 위해 태엽형 미로를 벗어나려는 나를, 마지막 남은 선임 연구원으로 프로젝트의 완주를 위해 방주를 향하는 진영을,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버겨워 잠길 위기에 처한 동네로 되돌아가는 선안을, 인간 은아를 사랑하게 되어 스스로를 조각조각 해체하는 우주 생명체를, 직업 윤리를 저버리고 인어를 바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정원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읽으면서 공감하고 감동하는 주인공의 힘겨운 선택에 이해와 응원을 보여주는 존재가 마치 연마노 작가처럼 다가왔다.
[떠나가는 관들에게]의 인서, [방주를 향해서]의 인공지능 율라, [아틀란티스의 여행자]의 진안, [저주 인형의 노래]의 돌고래, [마지막 인어]의 인어처럼 주인공들은 그들의 선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해주는 존재들이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나가보고 싶었어.
내 한계까지, 누구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곳까지.
서진은 인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동시에 몹시도, 애가 닳도록 필요했다.
어느 것도 오답일 수도 정답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서를 보내는 것에 대해 양가적 감정으로 흔들리는 서진이 인서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안해.
그리고 안 미안해.
…
알아.
나도 엄마한테 하나도 안 미안해.
그래도 날 사랑해?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하나의 인어를 위해 그 많은 노래를 세상에서 지우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점이 되어 외롭고 자유롭게 나아가는 인어의 뒷모습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은 그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