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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평점 :
원도/ 최진영/ 한겨레
<내가 되는 꿈>, <단 한 사람>으로 형상화된 '작가 최진영'은 기묘한 인물이었다. 그 안에 어떤 걸 품고 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려우면서도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기이한 작가였다. <구의 증명>가 유명하여 고등학생인 큰 아이가 친구한테 추천받았다며 읽어보고 싶다 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있었다. 복간 요청이 쇄도한 그 책이 11년 만에 작가가 붙인 원제 <원도>로 돌아왔다. 초판에서는 <원도>라 부르고 싶었고, 개정판에서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 부르고 싶었다는 최진영 작가의 말에 잠시 웃을 수 있는 쉼이 허락되었다. 읽는 내내 괴롭혔던 폐부를 짓누르고 찌르는 듯한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원도>는 그런 날선 기운과 팽팽한 긴장이 가득한 소설이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를 묻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죽지 않는가"를 처절하게 좇는 이야기다. 결국에는 그 외침이 "사랑받고 싶다. 구원받고 싶다."라는 절규로 들리게 되는 한 남자의 - 한 사람의 - 우리의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 자신 안의 광활한 구멍을 응시해야 한다.
"…… 나 혼자요."
독특한 구조로 원도의 기억이 서술된다. 문장 안에 볼드체로 특별한 목소리가 새겨진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원도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일까? 작가일까? 독자일까? 생각과 말을 부정하는, 뒤집는 그 소리들이 더 진실처럼 도드라졌다. 원도에게 강제된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원도야, 아버지를 믿어라.'
여섯 살, 자신의 눈앞에서 물을 마시고 죽은 아버지와
그날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지면서 원도는 더욱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모든 의심을 착각으로 만들고 착각을 무의미로 만든 기억. 애써 그린 그림을 깨끗이 지우고 원점으로, 백지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는 기억.'(167쪽)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죽은 친아버지와 산 새아버지.
죽은 새아버지와 산 친아버지.
순서가 맞지 않은 전개, 이 뒤죽박죽 뒤엉켜버린 순서 그리고 죽은 아버지의 기억이 원도의 삶을 지배해버렸다. 원도는 자유와 선택을 말하는 산 아버지와 용서를 말하는 어머니를 두었고, 아버지를 믿으라며 죽은 아버지를 두었다.
원도의 몸을 뚫고 지나간 구멍은 원도를 장민석에 대한 집착으로 이끌었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원도는 차츰 기억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은 아버지도 산 아버지도 죽은 장민석도 사라진 그녀도 더는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렇게 원도는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원도의 기억을 쫓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무섭고 두려운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최진영 작가는 <원도>를 써서 다음 질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홀로 정중히 그 질문을 마주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몸을 뚫은 그 광활한 구멍을 응시해야 할 시간이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