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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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박서련/ 안온북스




"나는 예술을 믿는다. 

신을 믿듯이 아름다움을 숭앙한다.

아름다움을 추종함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현앨리스가 나타났다."




박서련 작가를 [체공녀 강주룡] 작품으로 처음 만난 이로서 다시금 역사 소설로 찾아온 이 순간 벅찬 기쁨에 흠뻑 젖었다. 그만큼 최대한 진실을 쫓아 허구적 재현을 담아내고자 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역사적 사실 너머 주목받지 못하고 가라앉은 진실을 힘겹더라도 마침내 끌어올려 펼쳐 보이는 의지의 작가가 바로 박서련이다. 



[카카듀]는 현앨리스를 지켜보다 눈에 들어온 이경손을 화자로 내세워 현앨리스의 전기 중 공백 기간인 1928년부터 1929년 사이의 행적을 그린 작품이다.



경성 한복판 관훈동에 조선인이 문을 연 끽다점 '카카듀', 오스트리아 희곡 <초록 앵무새>에서 따온 '앵무새'라는 뜻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 즈음 파리에서 영업 중이던 주점의 주인은 배우를 영입하여 범죄자 연기를 하게 한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배우가 손님인 양 연기하고 어느새 손님도 공연에 어울리게 되는 거짓말의 전당, 그 주점의 이름이 바로 '초록 앵무새'다. 이런 배경을 보더라도 필시 경성의 끽다점 '카카듀' 역시 예사롭지 않을 듯했다.





"자리를 빌리고 이름을 빌렸지만,

그 이상 무엇도 흉내 내지 않고

우리의 것을 만들어갈 참이다."






박서련 작가는 실존 인물인 영화감독 이경손과 그의 오촌 조카인 현미옥-현앨리스를 통해 3.1운동 이후 민족과 나라의 고통에 눈을 뜨고 진정한 행동과 실천을 고민하는 망국의 청년들의 불안을 멋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현앨리스에게 관심이 가서 시작했는데 소설을 구상하는 동안에 이경손에게 매료되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어떤 점이 박서련 작가를 그렇게 매료시켰을까? 그래서 주저 없이 이야기의 화자로 '이경손'을 선택한 것일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박서련 작가가 탄생시킨 '이경손'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경손은 대대로 의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의원이 되지 않고 항해사, 성직자에 이어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보헤미안으로 살고자 한 그에게 큰 파장을 불러온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진정한 행동과 실천이란 무엇인가를 뜨겁게 물었던 사건…… 문학에 빠져들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싹 트였던 그였기에 민족의 시름 앞에 자신의 꿈은 얼마나 삿되고 이기적인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경손은 매형인 현순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그에게 매형의 큰딸인 미옥은 못나고 밉고 마뜩잖은 존재이다. 현순이 끔찍이 아끼는 자식이기 때문이다. 현순에게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못 서러워 사랑받는 존재를 미워하지만 어느새 미옥을 숭앙하게 되는 순수한 인물이다. 그래서 빠져들었나 보다. 박서련 작가도, 나도, 아니라고 하지만 현앨리스도. 




"이해할 수 있어요."


나를 이해해? 미옥이? 

미안하지만 평생 여학교에만 다닌, 

저 유명한 이화여고보를 불과 한두 달 전에 마친,

여학생 중의 여학생인 미옥이? 


하마터면 나는 감히? 하고 되물을 뻔했다. 






당대의 지식청년이자 예술인을 꿈꾸는 이경손이지만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소설 곳곳에서 아차! 하고 자책하는, 반성하는 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때마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참으로 반듯하고 바른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와 감정을 드러내다가도 어느새 부메랑처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반성하고 있다. 



이경손을 따라 일제 강점기 엄혹한 시대에도 꿈을 품고 예술을 펼치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흥미로웠다. 



시국이 가파를 때에 퇴폐가 만연하는 것은 필연인가?



암흑기일수록 더욱더 맹렬하게 타오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헤미안처럼 영원한 자유와 예술의 향유를 탐닉하는 이가 있다. 지식과 실천의 사이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했느냐? 혹은 포기했느냐?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라운규가 제작한 영화 '아리랑'은 조선인의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담아내어 새로운 조선 영화의 효시가 되었다. 억눌렸던 한을 스크린에서라도 터트려 많은 조선인의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예술의 힘과 영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그렇기에 이경손이 염려한 '예술인'의 진위가 오히려 더 와닿았다. 예술가가 아닌 자신을 예술가로 믿으며 살아가는 어릿광대인지, 일제의 앞잡이인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겠어.

어떻게 살아도 엉망진창일 것만 같아. 

끝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






현앨리스는 이경손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다. 포와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다시 상해로 건너가는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녔다. 임시정부의 밀사의 딸이자 미국 여권 소지자이자 코뮤니스트인 현미옥-현앨리스. 자신과 뜻을 같이 하길 바라는 아버지와 자신과는 다르게 넓은 삶의 무대에서 자유롭게 꿈과 재능을 펼치며 살길 소망한 어머니 사이에서 그녀는 당당히 선택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 비록 잘못 든 길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들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 뜻대로 어머니 원대로 자신 멋대로 살 수 없었다. 








이토록 삶의 궤도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경성 한복판에 끽다점 '카카듀'를 연다. 동상이몽, 앨리스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아니 의심조차 못하는 오촌 당숙 이경손은 그저 앨리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의 포부와 바람과는 다르게 영화는 줄줄이 망해 의기소침하고 있는 와중에 자신을 도와 끽다점을 운영하자고 하니 말이다. 간판도 없이 바가지 세 개를 달고 시작한 '카카듀'는 앨리스 덕분에 자리를 잡게 된다. 




"시절도 모르고 신들 났네."




가게를 연지 몇 개월 만에  문을 닫은 끽다점 '카카듀' 그리고 홀연히 사라진 현앨리스와 이경손.

이 공백을 박서련 작가는 특유의 흡입력 넘치는 문장과 입체적인 인물로 소설 <카카듀>에서 채워 넣고 있다. 설득력 강한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이 잘 뭉쳐져 세심히 살피지 못한 우리의 미흡함을 탓하기라도 하듯 소설 <카카듀>는 1928년 가을과 겨울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가파른 시국에서 살고자 했던, 살아야 했던 우리네 청년들이 겪었을 고뇌와 불안을 말이다. 





"아아, 이 계집애 앞에 있으니 내가 가짜처럼 느껴진다."





[카카듀], 현앨리스와 이성용의 합작으로 이경손을 앞세워 많은 문인과 예술인의 향연장으로 꾸민 거짓의 전당.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이경손의 선택이 자못 흥미롭다. 








망국의 청년이 현실을 직시하는 다양한 태도를 관조할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카카듀]. 익히 들어온 역사 속 인물들이 걸어 나와 보여주고 들려주는 생동감 넘치고 치열한 일상은 저릿하고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들의 내일이 바로 우리의 오늘이라는 사실에 비장해지기까지 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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