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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지음,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4년 2월
평점 :
'죽음'은 두렵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죽는지 안다면 달라질까? 죽는 날을 알 수 있다면 아는 게 맞을까? 좋을까?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속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람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죽음이 두렵지라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알게 된 이후에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 어차피 언제 죽을지 아니까 마음껏 즐기다 가겠다는 듯 더 방탕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나 또한 죽음이 두렵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이 더 값진 하루라 생각하기에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은.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저/ 풀빛
"어느 날… 나에게 너의 죽음이 보였다."
이 책의 주인공 담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가지게 된 특별한 능력 - 죽음의 디데이 - 을 지니게 된다. 관계 맺은 사람들 머리 위로 뜬 초록색 링 안에 새겨진 선명한 숫자, 바로 죽음의 디데이를 볼 수 있다. 대단한 초능력 같지만 볼 수만 있을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담이는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친구 동우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커다란 상실감과 자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 어느 누가 이겨낼 수 있을까? - 담이는 스스로 관계를 끊어버린다.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타인과의 교류를 단절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털보 아저씨와 소미소를 만나게 되면서 차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담이는 자신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존재, 같은 고통과 좌절을 겪은 존재, 하지만 다시 일어나 나름의 살아가는 의미를 찾은 털보 아저씨를 만나 안정을 되찾고 여물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찡하면서 뭉클했다. 살아가면서 가족만큼 친구, 동지, 어른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담이는 소중한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품고 산다. 그래서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냈지만 '소미소'라는 강적을 만나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남들의 죽음의 디데이를 곁에 두고 살면서 굳게 잠가두어야만 했던 감정들이 다시 온몸을 타고 흐른다. 사람의 온기가 지닌 힘이 아닐까 싶다. 그제야 17살, 제 나이처럼 보였다.
이렇게 몽글몽글한 이야기가 진행되다 위기가 찾아오고, 이야기는 반전을 품고 있었다. 이 반전은 해일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담이는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털보 아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담이는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삶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살아있으니까 산다. 대신 우리는 매일 살아가는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간혹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숭고한 '희생'과 '사랑'을 하기도, 만나기도, 보기도 한다.
큰 아픔 뒤 생긴 특별한 능력을 다시 남을 위해 사용하는, 다정하고 단단한 심성을 지닌 담이와 털보 아저씨 같은 이들 덕분에 세상의 온기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우리는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자책하기도 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어두운 터널 속에 머무르지 않고 끝끝내 빛을 마주하고자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살아간다. 의지를 가지고 단단히 여물어가는 인물들 뒤로 삶을, 자신을 사랑하는, 웃는 우리가 겹쳐 보였다. 사람 때문에 아팠지만, 사람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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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을지 알면, 그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 있어요?"라는 담이의 질문에 답한 할머니의 말씀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너랑 같이 앉아서 오순도순 밥 먹는 거. 우리 담이 잘 크는 모습 지켜보는 거."
"에이, 별 거 없네요."
"인생은 원래 별 게 없단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또 그 별 거 없는 것들 때문에 살아지는 거야.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를 풍미 가득한 빵 내음과 함께 풋풋하고 싱그러운 십 대 감성으로 풀어낸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풀빛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 대본집으로 만나 뜻깊게 다가왔다.
* 100자 감상평 *
담이와 미소, 털보 아저씨를 만나 삶의 의미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유한한 삶의 끝을 미리 안다는 게 오히려 고통이 되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남을 위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이들의 의지가, 마음이 삭막한 이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