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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를 해부하다 - 〈키스〉에서 시작하는 인간 발생의 비밀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황금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그림,
사랑하는 연인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에 대한 감상이었다.
찬란한 황금으로 뒤덮인 화려하고 관능적이며 상징적인 그림으로만 여겼건만……
클림트를 해부하다/ 유임주 지음/ 한겨레출판
유임주 해부학자가 지은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마주하고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저자는 클림트의 그림에 감춰진 해부학 코드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위시하여 에드바르 뭉크, 에곤 실레,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바실리 칸딘스키 등 여러 화가들의 그림에 숨겨진 그 시대의 의학 지식과 사회적 배경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풀이해 주고 있다.
해부학자가 클림트가 그림에 담고자 했던 '인간의 기원'에 대한 염원을 이해하고자 '예술과 의학'에 관한 역사를 되짚어가는 수고를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다룬 문학, 그 집성체인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읽는 내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삶의 근원적 질문인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의과학적ㆍ철학적ㆍ예술적 접근을 시도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전격 해부해나가는 과정은 '생명에 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사랑과 희망'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다. 생성 - 생식 - 소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단순히 한 개인의 시점에서 소멸인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생식 - 자녀로 이어지는 영속성으로 끊임없이 진화해나가는 인류를 그리고 있다.
"서로 껴안으라, 백만이여! 온 세상에 이 입맞춤을!"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가사 중 -
책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시대의 지식을 탐구하여 그 이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표현으로 예술세계에 녹여낸 예술가들을 만나는 일은 경이로웠다.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이끌어준 유임주 저자 또한 놀라웠다.
"클림트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 그림들을 의학적인 관점에서
해부해 보는 일의 의의는 무엇일까?"
- '작가의 말' 중 -
이 혁신적이고 고무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저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먼저, 그림에 해부학적 상징을 넣게 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으로 떠나게 된다. '빈 1900' 시기에 꽃피웠던 빈 모더니즘이 배경이 되어 미술·음악·의학·철학·경제학ㆍ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빈 특유의 살롱·카페 문화로 의사, 예술가, 작가, 음악가, 철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여러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였다.
"검열은 충분히 겪었다.
이제는 내 뜻대로 할 것이다."
- 구스타프 클림트 -
클림트 역시 빈에서 활동하면서 해부학자 에밀 주커칸들 교수를 통해 찰스 다윈과 에른스트 헤켈의 이론과 연구를 소개받았다. 그는 주커칸들 교수의 강의와, 교류를 통해 해부학, 발생학, 조직학에서 표출된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그림 속 중요한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p.90)
클림트의 작품을 두루 접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접하게 된 작품과 그 안에 심어둔 메시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클림트는 변화를 추구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분리파(제체시온)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분리파 잡지인 <성스러운 봄> 출간호에 판화 <벌거벗은 진실>(1898)을 실었다. 유임주 저자는 이 <벌거벗은 진실>부터 시작하여 클림트가 생각하기 시작한 새로운 예술 세계를 의학적 관점에서 파헤치기 시작한다.
<벌거벗은 진실>(1898)
<빈 대학교의 천장화> 중 <철학>, <의학>, <법학>(1899~1907)
<베토벤 프리즈>(1901~1902)
<키스>(1907~1908)
<다나에>(1907~1908)
<희망Ⅰ>(1903)
<희망Ⅱ>(1907~1908)
<여인의 세 시기>(1905)
<죽음과 삶>(1910~1915)
<스토클레 프리즈>(1905-1919)
화려하고 찬란한 황금빛에 도취되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표정과 자세만 살펴보다,
화가의 감정선을 따라가려가 보려다……
놓쳐버린 아니 전혀 상상조차 못한 해부학적 코드를 직접 확인하고는 온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진짜? 그런 의미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진득하고 꾸준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풍에 설득당했다. 사실 작품을 채우는 도형들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정자, 난자, 오디배, 태아막, 적혈구, 혈액, 자궁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당연한 지식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주장이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에 매혹당한 예술가들을 자연스레 이해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한 발생학의 역사 부록이 인상적이었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후무한 상태라 '전성설'이 충격적이었지만 고대부터 꾸준히 인간의 기원에 관한 사유가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
"클림트의 <키스>는 사람 발생의 초기 내용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미국의학회지 JAMA에 실린 유임주 교수 공저 논문 제목 -
비로소 눈을 뜨고 진짜 바라보게 된 '인간의 기원'에 대한 흥분과 설렘을 자신의 그림에 담는 행위는 예술가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년이 훌쩍 넘어서야 그들의 의도를 살피게 되었으니 참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대의 예술은 그 시대를 자유로이 담고, 후대는 이를 통해 그 시대를 다채롭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저자는 클림트 외에도 발생학, 진화론, 세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작품을 그린 화가들을 다수 소개한다. 친숙하고 예상 가능했던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와 친숙하지만 연결 짓지 못했던 에드바르 뭉크, 바실리 칸딘스키 등 여러 화가들이 등장하였다.
우리네 현실에서 겪는 생의 순환과 발생학, 세포, 생식을 재료로 우리가 겪는 두려움, 고통, 사랑, 희망을 표현한 새로운 예술을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준 『클림트를 해부하다』
투명하게 보이는 예술이 아니라 호기심을 부르고 사유하게 하는 예술을 만나 또 다른 배움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한겨레 하니포터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