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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이지 뷰티/ 클로이 쿠퍼 존스/ 한겨레출판
책 제목이 이지 뷰티, 쉬운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어려운 아름다움도 있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철학 교수인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이 주장한 '쉬운 아름다움'과 '어려운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의 미학,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 삶을 대하는 자세 등 자신을 성찰한다. 1여 년의 시간에 걸쳐 아름다움에 관하여 생각하고 나약한 구경꾼이었던 스스로를 벗어나려는 시도와 의지를 기록한 작품이다.
철학 교수이자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천골무형성증을 지니고 태어났다. 몸집이 왜소하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그녀를 대하는 타인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반응과 견해, 시선을 담고 있다. 대부분 클로이의 본질이 아닌 외면, 장애에 머무르는 편협하거나 왜곡된 시선이었다. 친절이나 배려 또한 그녀를 배제한 자신의 세상에 머무른 것들이라 그녀는 존중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토로했다.
읽는 내내 잘게 쪼개지고 부서지다가 클로이에 의해 다시 모아지고 아름다움에 의해 다시 뭉쳐지고 나를 사랑하는 자신에 의해 온전한 나로 다시 빚어지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
"다른 장소에 다른 식으로 존재하고 싶은 갈망이 느껴졌다."
철학과 동료인 제이와 가진 술자리에서 그녀를 앞에 두고 벌인 충격적인 토론에서 시작된 책은 1여 년 후 친구 링컨의 생일파티에서 카일의 무례한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이 기간 동안 여행을 반복하면서 아름다움에 관한 생각에 몰두한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떠난 공간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의 예상치 못한 접촉과 교류는 클로이를 뒤흔든다.
갈등이 있던 늦깎이 제자가 권했던 비욘세 콘서트를 보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기꺼이 보내주었던 밀라노행. 구상했던 여행과는 다른 여정이었지만, 기존의 자신을 부수는 계기가 되어준 여행이었다. 쉬운 아름다움이라 치부했던 아름다움이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현재의 절대성을 보여주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로 끌어당기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방어적인 태도로 안전지대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현재를 인식하게 된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왜 예술 작품에서 인간의 고통을 마주할 때는 미학적 즐거움을 얻는가? "
박사논문 작성을 위한 캄보디아행.
클로이는 평생 남들처럼 진짜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기에 현실 경계선 바깥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툭툭 기사 체트라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면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체트라가 자신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진정 어린 배려를 보여주었기에 더 뼈아픈 경험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를 통해 과거에서 탈피하여 움츠렸던 날개를 펼치려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클로이의 가족들. 부모님, 남편 앤드류와 아들 울프강. 클로이와 너무 닮은 아빠와 클로이를 현실 세계에 자리 잡게 양육해 준 엄마와 클로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남편 그리고 클로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리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아들.
클로이 곁에 이런 가족들이 있어주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영혼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탈출구를 찾을 때 너는 어디로 가니?"
탈출구를 술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찾은 아빠를 보고 자란 그녀는 '중립의 방'으로 들어간다.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지만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침잠할 수 있기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 모욕을 떠올려보면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현재 속에서 진실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이토록 영민하고 똑똑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움츠려들 수밖에 없게 만든 주변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아름다움을 갈구하여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쉼 없이 살피는 각고의 노력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기꺼이 도전하는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눈에 보이는 장애로 콜린이나 카일처럼 무례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타인들을 만나는 일이 있지만, 어느새 단단해진 그녀의 내면은 자신을 억누르거나 탓하지 않고 현재를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펜으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아름다움에 관해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철학자이자 이야기꾼인 클로이 쿠퍼 존스의 <이지 뷰티>를 만나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선물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