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6
하유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제 맘대로 세상을 초기화할 수가 있어요?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여름 양의 우주인 걸요."

 

 

모든 존재에게는 각자의 우주가 있고, 모두가 자신의 우주에서는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은 초기화 권한을 가진다.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를 화두로 던지는 흥미로운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하유지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이번 생은 해피 어게인> 앤솔로지에서 「그 여름, 설아와 고양이」라는 단편으로 접한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어 더 풍성한 이야기로 찾아와 반가웠다. 참신한 소재라 더 깊이 있게 더 광범위하게 확장시켜 여름과 테리의 우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머스터드와 겨자, 설아와 윈터를 포함한 다정한 세상이라 더 기뻤다.

 

 


 

 

여름이는 12살에 코스모스 그룹을 알게 되어 다비드호에 승선을 한다. 그곳에서 꿀벌 선장을 만나 초기화 권한에 대해 듣게 된다.

처음이 어려웠던 초기화는 하다 보니 습관성 초기화가 되어버렸다. 입시 제도가 바뀐다든지 은따 노릇에 급 울화가 치솟는다든지, 나중에 가서는 새로 한 머리가 이상하기만 해도 역시 난 망했다고 초기화를 실행하였다. 좀비나 메뚜기 떼, 전염병 등으로 지구의 위기가 찾아오거나 여름이네 집에 불행이 찾아오는 등 세상은 초기화를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름이는 중고등학생 때마다 초기화를 해 세상에 보라색 구름을 불러들였다. 그러면 세상은 비눗방울이 터지듯이 톡! 하고 끝났다.

 

이 세상에는 신기하게도 초기화 권한자, 0의 제왕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60대의 테리 할머니다. 예전에는 초기화를 빈번하게 했지만 문득 삶의 끝이 궁금해진 그는 초기화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할머니인 그는 동호회 사람들과 소풍 갔던 그날 뜻밖의 초기화를 경험한다. 내가 하지 않았는데? 누가? 내 우주인데? 보라색 구름은 그렇게 세상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초기화가 계속되자 테리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초기화를 할 수 있는 설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진실을 알게 된다.

 

 


 

 

여름과 테리는 이 소설 속 우주 주인공으로 초기화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설정이다. 이런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여름이처럼 내 우주니까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실제 가능한 일인가 싶어 초기화를 해보고 싶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우주의 주인공이니 주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화는 가능하지만 세상은 결코 여름의 뜻대로, 테리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같으나 약간의 설정도 변경된 예측불가한 세상이 시작된다. 분명 매번 다른 단 한 번뿐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름은 중학생, 테리는 60대 할머니다. 여름은 초기화를 하려 하고, 테리는 이제는 끝까지 살아보려 한다. 둘의 차이점은 뭘까? 분명한 차이인 나이 말고도 삶의 태도가 다르다.

여름은 반복되는 세상의 미묘한 변화에 둔감해져 그저 살아갈 뿐이다. 가족과 생일 등 기본적인 설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제 중학생인 여름은 세상 다 살아본 노인처럼 의욕이 없다.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언제든 초기화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까?

테리는 이제는 삶의 끝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이 좋다. 무언가를 배우고 타인과 소통해가면서 삶의 소소한 행복과 잔잔한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이대로 끝까지 가고 싶다.

 

테리가 윈터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소중함을 느낀 것처럼 여름이가 고양이 머스터드(머쓱이)를 애틋하게 여겨 그와 함께 하고픈 욕망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결국 여름은 초기화를 선택했다. 이번 생에 설아와 겨자를 만났다. 그리고 설아는 여름이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나한테 다이어리는 하루하루 완성해 가는 책 같은 거거든.

아쉬운 데가 있다고 뜯어내면 책 내용이 끊기잖아.

인생을 그런 식으로 편집하는 건 아닌 거 같아, 난."

- 설아가 여름이에게

 

 

고양이 겨자를 계기로 설아에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되면서 여름은 깨닫는다.

 

"어쩌면 이제까지 난 거꾸로 된 렌즈에 눈을 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보여, 세상이 고장 났어, 중얼거리면서."

- 여름

 

 

초기화는 답이 될 수 없었다. "난 다른 세상 말고 여기 있을래. 완벽하진 않지만 너랑 겨자도 있고, 지금이 좋아."라는 말처럼 자신의 속내까지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힘들어도 괴로워도 서로 사랑하고 믿고 함께 나아가려는 세상은 살아갈만하지 않은가. 자신을 기다려주고 웃어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면 충분히 아름답고 다정한 세상일 것이다.

 

남과 관계를 맺어 확장되어나가는 우리의 무한한 우주를 판타지하게 그려낸 청소년 소설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를 추천한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테리 할머니와 여름의 관계는 책을 통해 직접 알아보기를 바란다. 무더위에 지친 일상에 청량한 자극이 되어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