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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ㅣ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평점 :
『큔, 아름다운 곡선』/ 김규림 저/ 자이언트 스텝 01/ 자이언트북스
오랜만에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중간중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오열을 하는 나를 내가 인지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사랑'이 삶을 지배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일까. 공기처럼, 그림처럼 안온하던 연인들이 자신들의 감정이 아닌 외부의 억압과 폭력에 무너져내리는 비극이 더 커다란 충격으로 나를 강타한 것 같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간형 안드로이드인 큔과 인간 신제이의 사랑이 골자인 소설 큔, 아름다운 곡선
좋아하는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 스쳐 지나가고, 각색되었지만 글 곳곳에 차용된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커졌다.
김규림 작가의 첫 소설이자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인 큔, 아름다운 곡선 은 독특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차갑고 건조하던 제이의 삶이 갑자기 배달된 상자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따사로워지고 포근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안드로이드 제작회사 샴하트의 창시자 마이클 신의 딸인 신제이는 오해로 아버지와 연을 끊은 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시절 친구인 '유성운'이 찾아와 설득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 때문에 샴하트 이사로 재임하게 된다. 몸은 샴하트에 있지만 마음은 거리를 둔 채 살아가던 그는 간병인 안드로이드 '큔'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소설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닌 포괄적인 의미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도 딸을 향한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원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간절히 원했던 자식을 떠나보내고 똑같이 생긴 건강한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딸처럼 키우며 행복했던 부모가 끔찍한 사건으로 다시 한번 딸을 떠나보내기로 굳은 결심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지금도 눈앞이 흐릿해진다. 제이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 인물인 정원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또한 사랑일까? 싶지만 이홍과 그레이스의 관계도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제이가 큔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상대가 밀어내는 상황에서도 점진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제이도 자연스레 큔에게 스며들게 된 게 아닐까.
"호기심과 호감으로 가득 찬 시선에 딱딱했던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듯 간질거렸다. 네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행복해진 것 같은데, 너는 그토록 애쓰고 있구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관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에 차가움으로 자신을 보호했던 여리고 다정한 내면의 제이가 깨어나 큔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했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얻고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의 무게를."
둘의 사랑은 특별하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의 감정 교류이기에. 제이가 범하는 실수, 오류를 눈여겨보게 된다. 신이 인간에게 했듯이, 우리도 안드로이드를 대하는 듯싶지만 결국에는 제이도 자신의 우를 깨닫는다.
가까워서 서로를 잘 들여다볼 것 같은데 아둔한 우리는 타인보다 가족을 더 잘 모르고 더 잘 오해하게 되는 듯하다. 기대가 커서일까? 당연하게 받아들여서일까? 제이와 마이클 신 사이에 한번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제이'를 위한 것이었기에 제이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노력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의 공간에서 오늘날의 현대인들도 느끼는 두려움, 분노가 갈등의 매개체가 되어 사회 전체를 분열시키고 폭력에 물들게 하는 흐름이 낯설지 않다. 우리네 역사 속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혼란 속에서도 귀한 가치를, 소중한 존재를, 삶의 진정한 의미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이들의 투쟁이, 사랑이 깜깜한 어둠을 가르는 빛줄기가 되어주리라.
'길가메시 서사시'를 활용하여 인간, 생명, 죽음, 사랑, 기억, 실존의 의미를 아름답게 그려낸 김규림 작가의 큔, 아름다운 곡선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길 수 있는 변화에 대해 한 장을 펼쳐 보이고, 사랑을 노래한다.
마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 않냐고? 나라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본문에서_ p.108,109
인간이란 시간 위에 선을 그리는 존재예요.
……
저는 당신이 그린 선의 뒤를 따르는 선이에요. 그렇지만 제 선은 삐뚤빼뚤하죠. 당신이 오른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고 뛰어가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하고 당신의 선을 놓치기도 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감정이 어디로 휘어지는지, 얼마만큼의 속도로 달려가는지. 그러면 저는 당신의 선을 따라 아름다운 선을 그릴 수 있어요. 꽤 근사한 섬광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당신이 기회를 준다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 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_ 큔의 진심 어린 고백
"기회를 간절히 원하는 건 나였다."
_ 제이의 진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