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양을 훔친 여자
설송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평점 :
"북한에서 인생 2회자 살아가기"
남북한으로 나누어져 있는 한반도.
'한민족'이라 외치던 우리 민족이 분단된지도 어느덧 8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외세의 개입으로 단일국가를 이루려는 불씨를 피우기도 전에 무참히 찢어진 북한과 남한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가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는 '반공'을 부르짖으면서 '통일'을 기원했었다. 하지만 8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북한'과 '한민족' 그리고 '통일'에 대한 당위성은 점점 희석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역시나 궁금하고 계속 관심이 가는 나라가 '북한'이다. 그 북한을 배경으로 인생 2회차를 살게 된 여성 기업가 이야기가 소설로 나왔다. 어찌 흥미가 동하지 않겠는가.
태양을 훔친 여자/ 설송아 저/ 자음과모음
저자 설송아 본인이 북한에서 살던 당시에 몸으로 부딪쳤던, 살아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야기라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북한 여성의 불합리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서 제한한 성을 스스로 넘어서는 강인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방송가를 떠뜰썩하게 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회귀물'이다. 이미 살아본 적이 있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면, 다들 어떻게 할까? 물론 호재를 취하고 악재는 멀리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적극 활용하여 인생 대역전을 펼치지 않을까? '봄순'의 선택은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봄순아, 추운 날에 태어나서 고생했지만
너는 꼭 봄처럼 따스한 삶을 살 거라."
- 외할머니께서 봄순이에게 남긴 말씀
매서운 엄동설한에 유일하게 달려와준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힘겨운 산고 끝에 태어난 '봄순'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외할머니는 이렇듯 따스한 말씀을 남기시고, 봄순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봄순의 삶과 맞바꾼 삶이었다.
탄생부터 험난했던 봄순의 1차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성분제 사회에서 교화자 출신 아버지를 두었다는 사실은 큰 약점이 된 것이다. 당에 충성하여 입당하고 핵심당원이 되면 성분을 개조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화학공장에서 일한 것도, 좋아하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성분이 좋은 집안 남자와 한 결혼도 모두 헛짓이었다. 세상이 그어놓은 잣대에서, 나라가 씌어놓은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몸부림쳤으나 봄순은 싸늘한 아스팔트 바닥에서 어린 딸아이 '미애'와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1998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지만, '봄순'은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거머쥔 '성공의 치트키'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격동하는 북한 사회를 잘 활용하여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2회차 인생에서도 똑같이 비열하고 야비한 남편 '철욱'에게는 분노의 주먹을 날렸다. 가부장주의, 성분 주의에 사로잡혀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야무진 아내 '봄순'에게 모진 말과 폭력을 행사하는 철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애'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참는 봄순이의 속내를 알기에 내 억장만 수차례 무너져 내렸다.
시대의 흐름을 안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봄순이의 사업감각은 실로 놀라웠다. 저자 본인의 실제 경험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놀라웠다. 북한의 경제, 사회 사정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소설 속 내용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이런 일들이 정말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국민들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싶어서 납득이 되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조망하는 대범한 '봄순'이의 모습에서 여러 역사적인 인물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과 포부 그리고 결단력과 실행력은 선구자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봄순은 사회주의 체제, 가부장제, 남녀 차별 등 기존 사회질서에 물러서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면서 염원하던 핵심계층으로 성장하였다.
"겨울은 다시 오겠지만, 봄도 그러할 것이다."
'봄순'이를 보면 호랑이가 떠오른다. 차분히 사냥감을 관찰하다가 갑자기 뛰어들어 한순간에 제압하는 숲의 제왕! 봄순이도 사람을 읽고, 시장을 읽고, 시대를 읽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맹렬하게 뛰어들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녀를 보면서 2회차 인생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자신의 운명에 당당하게 맞선 그녀의 행보에 고무되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나 힘겨운 국가와 변화의 흐름을 읽고 돈주가 되어 경제 주체로 부상하는 새로운 계층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야기 사이에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이들의 진솔한 대화에도 눈길이 간다.
정주영 회장이 1,001마리 소떼 방북 사건으로 등장하는 데 소를 두고 하는 대화가 재미지다. 또 일상의 퍽퍽함이 녹아있는 말이나 이겨내고자 나누는 우스갯소리도 흡인력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과 딸아이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사랑하던 이들의 안부를 챙기던 봄순이, '미애'를 결코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순간부터는 달라졌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그녀는 권력과 성분, 자본을 다 가졌다.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당찬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동찬'이 옆에 있다. 모진 역경을 이겨낸 그녀는 여유롭다. 인생의 순리를 알게 된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읽고 틈새를 파고들어 기업가로 당당하게 성장하는 '봄순'의 서사는 격동하는 시대 흐름을 타고 비상하는 선구자의 역사적 기록물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