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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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한겨레출판

 


 

《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승리하고 성취한 정복자의 업적과 시간, 공간이 아닌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에 묻힌 이야기를 먼지 가득 쌓인 상자 속에서 꺼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임을 알기에 융성했던 지역이 폐허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의 오늘날을 반추해 보는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버려진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파헤쳐지고 개발돼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들어서고 밀물처럼 사람들이 떠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공허하고 음산한 지역들이 연달아 소개된다. 지구의 시간과 인간이 지구에 살아온 시간을 비교하면 점 같은 짧은 찰나에 섬광 같은 흥망이 세계 각지에서 반복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한다.

 



읽다 보니 폐허를 화두에 오르게 하는 이가 누굴까? 궁금증이 생긴다. 대체로 작가를 크게 고려치 않고 읽다가 마음에 닿으면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 작품들을 정독한다.

이 책의 저자는 '트래비스 엘버러'로 카리브해의 해적부터 LP까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글쓰기의 대가로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낯선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는 설명에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저자의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더 크게 느끼게 한다'라는 찬사를 받은 <별난 장소들의 지도>, '올해의 여행책'을 수상한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등 전작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40곳의 폐허를 5개 꼭지로 묶어서 소개하고 있다.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

- 아이티 혁명의 영웅은 왜 독재자가 됐을까

상수시궁전/아이티

 

'근심 걱정 없는'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아이티와 연관 짓기 힘든 단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는 지독한 독재를 겪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부패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자연재해로 참혹한 피해를 보았다. 그런데 지진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아이티의 전설적 건물, 상수시 궁전의 이름이 바로 '근심 걱정 없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이티는 최초로 흑인이 독립을 주도한 주권국가이자 유일하게 노예 반란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예를 해방한 사회이다. 그 주역이 '앙리 크리스토프'로 둘로 분리된 아이티 북쪽의 수장이 되었다. 나라를 이끌면서 점차 독재자로 변해가던 그가 자신을 위해 세운 요새가 바로 '상수시 궁전'이었다. 장엄하고 화려한 궁전이 완성되기까지 평범한 아이티인 수백 명,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이 지진으로 파괴되고 남은 잔해는 아이티가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압제의 섬뜩한 폭력에 대한 말 없는 증인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

- 히틀러는 왜 조상들의 고향을 없애려고 했을까

될러스하임/오스트리아

 

히틀러의 조상이 살았던 곳이 독일군 전투 훈련지로 사용된 연유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그가 그렇게 증오했던 유대인과의 연관설까지 그를 둘러싼 논쟁이 아직도 분분하다고 하니, 나치가 내세웠던 우생학의 논거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나.

현재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될러스하임은 일반인들에게 일부 공개되었다. 폭격에 부서진 폐허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배우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다

- '카멜롯'이란 이름의 저주

카멜롯 테마파크/영국

 

아서왕 전설을 중심으로 꾸며놓은 56만 6000제곱미터 면적의 테마파크가 지난날의 명성을 뒤로 한 채 문을 굳게 닫았다. 저자는 멀린이 요술 지팡이를 흔들더라도 순진무구했던 시절을 되살리지는 못할 것이라 기록한다.

녹이 슨 채 방치된 나이트메어 롤러코스터의 황량한 모습이 카멜롯의 저주처럼 마음을 뒤흔들었다.

 

 

 

카멜롯 테마파크의 최고 놀이 기구 '나이트메어 롤러코스터'


 

 


찬란한 영광의 잔해

- 뉴욕 대표 지하철역이 폐쇄된 이유

시청 지하철역/미국

 

아이러니하게도 지하철이 성공하여 지하철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가장 유명한 시청역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플랫폼이 짧고 크게 휘어서 승객 수용 능력을 늘이고자 도입한 더 긴 열차가 이용할 수 없어서.

보안상을 이유로 개방이 어려운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우리는 언제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사진을 뚫고 나오는 찬란함에 시선이 절로 머무른다.

 

 

 

시청역의 아치 천장과 정교한 천창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

- 여성들은 그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캄펜섬/우간다

 

 

우리는 불의를 생생하게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이 문장으로 아캄펜섬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그곳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가족에게 수치를 안겨준 젊은 처녀가 끌려와서 버려지는 곳이었다.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 죽거나, 직접 목숨을 끊기 위해서 또는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물에 뛰어들었다가 죽는다.

20세기에도 꾸준히 이어졌다는 글에서 마음의 끈이 뚝! 뚝! 끊어졌다. 더욱이 섬이 있는 분요니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섬이 머지않아 물 아래로 사라지게 될 위험에 빠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젊은 여성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땅덩어리가 사라진다니, 인과응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섬에서 벌어진 일도 점점 잊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불의를 생생하게 기억해야 한다. 비록 아캄펜섬이 사라질지라도.

 

 

 

저자는 '잊는다'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폐허로 변해버린 곳,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이야기로 어느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잊지 않기를 염원하고 있다. 방치되어 버려진 장소가 잊혀야 할 곳이 아니라, 그 장소의 의미를 열심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폐허를 통해 다가올 세상을 혹은 잔해에서 진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며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를 권하고 있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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