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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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소설집/ 한겨레출판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한 시간이었다.

동년배 작가가 시대의 비극을 노래한 단편선은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나는 마냥 미안하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깊이 패인 현대사 굴곡을 '장르 문학'으로 감싸 안아 환기시키고 있다. '전혜진' 그만의 방식으로 폭력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더 나은 세상을 염원하는 한 걸음을 토해낸다. 그가 그리는 공감과 연대의 길에 많은 이들이 동행하기를 바라며 <바늘 끝에 사람이>를 권한다.

 

7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평범한 우리네들이 겪은 역사 속 잔혹한 폭력에 상상의 힘을 더해 생생하게 뚜렷하게 담아내었다.

 


/바늘 끝에 사람이

- 제 손으로 땀 흘리고 일하는 노동자를 정당하게 대우하는 사회는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가

 

 

“만약 내가 세상이 말하는 투사라면,

나를 투사로 만든 것은 바로 세상이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7만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기권을 아득히 벗어난 곳인 우주 궤도 엘리베이터의 카운터웨이트, 그곳에 회사의 복귀 명령에 따르지 않고 홀로 남은 '나'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고공농성을 벌인 노동자 김진숙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몸을 기계로 바꾸고 또다시 능률을 위해 기계로 바꿔 사이보그가 되어 회사에 예속되는 결과에 이른 노동자의 처절한 삶 어디에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노비도 아니고, 회사 소유물도 아니고,

일 시킬 때만 전원 넣고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기계도 아니잖아요."

- 회사 후배 주안의 말

 


 

 

'농성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일'

역사 속 수많은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소설 속 나는 다시 한다. 우리 모두 사람이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안나푸르나

-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길은 무엇일까

 

"닫힌 교문을 열며"

 

안나푸르나,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

네팔 말로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아래 새겨지듯 선명한 희고 뾰족한 산봉우리에 잠든 선생님을 추억하는 이들의 직업은 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으로 한 학기 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그가 보여준 참교육에 대한 열의는 제자에게 오롯이 새겨져 있다. 먹먹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글이었다.

 

 


/할망의 귀환, 단지

- 제주 4.3, 우리는 어느 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제주 4.3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연좌제처럼 족쇄가 되어 말하지 못하고 삭혀야만 했던 아픔과 고통은 애끓는 분노가 되었다. 전혜진 작가는 이를 고전 설화와 무당과 접목시켜 호러 미스터리로 제주도민의 애통한 마음과 분노를 표출하였다. 오싹하면서도 피맺힌 그들의 한에 가슴 저려, 끝내는 오열하였다. 국가 권력 아래 자행된 잔인한 폭력에 무참히 짓밟힌 생명들이 가여워서, 모르고 지내온 시간이 미안해서.

 



/내가 만난 신의 모습은

- 인간의 기본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 전쟁의 참상은 그 어떤 생각보다 잔인하다.

 

읽으면서 몇 년 전 개봉했던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 떠올랐다. 펜 대신 총, 칼을 들고 학교가 아닌 전쟁터로 향해야 했던 학도병의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혔는데 글로 만나는 학도병 이야기는 신성한 존재가 등장하여 악랄한 죄를 범한 인간을 벌하니 숙연해졌다. 새삼 인류가 저지르는 크나큰 범죄인 전쟁의 무게가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그 수라장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창백한 눈송이들

공군 내 성범죄를 다룬 이야기다.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해자는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은 비상식적인 상황이 계속되었다. 결국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바로 귀신들이었다. 죽은 여군들.

 


"여군을 추행했을 때는 술 먹고 그럴 수 있다더니,

유리창을 박살 내고 자기들끼리 치고받은 것은 문제가 된다니. "

 


 

 


/너의 손을 잡고서

- 살아남는 것이 고통이라 말하는 국가폭력 생존자의 고백을 이제는 우리가 짊어져 덜어주어야 마땅하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팽배하던 시절에는 살기 위해 광주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숨겨야 했다.

 

"산 사람의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의 온기를 실감하면서."

 

 


 


 

한 권의 책에 이토록 깊이 팬 상처들을 담고자 한 전혜진 작가의 용기와 패기에 새삼 감복하였다. 단편이지만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장르화하여 독창적인 결말로 토해낸 기염이 대단하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힘과 용기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감과 연대를 전하는 <바늘 끝에 사람이>, 널리 읽히길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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