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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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시리즈 17

신진작가의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어 애정 하는 이 시리즈 최신작은 『엄마를 절에 버리러』다. 심상치 않은 제목을 앞세우고 나온 작품인지라 주제의식, 작가의 의도가 매우 궁금하였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 이서수 소설/ 트리플 17/ 자음과모음


 

 

모녀, 엄마와 딸은 참 묘한 관계이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애틋하다. 싸우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이 보여도 마냥 기쁘지 않지만, 돌아서면 마냥 그립고 아련하다. 이런 끈끈한 감정적 유대관계가 '엄마와 딸'을 대표하는 수식어다. 하지만 이서수 작가는 발칙한 제목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엄마를 절에 버리러>를 통해 '모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세 편 모두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남성인 아버지, 아들, 남편은 희미한 존재들이다. 아파서 가족을 경제적 곤란에 처하게 하거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뿐이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고자 하는 주체는 엄마와 딸이다. 그리고 그들은 끈끈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이룬다. 절대 도망칠 수 없는, 도망쳐서도 안되는 경제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에는 경제적 주체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딸'과 딸의 경제적 보살핌 아래서 살아가는 육십 대 '엄마'의 이야기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엄마는 종일 아버지한테 붙잡혀서 어미 귀신같은 몰골로 살고, 나도 종일 일하느라 새끼 귀신같은 몰골로 살았잖아.

 

근데 엄마, 이게 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래.

내가 이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게 당연한 거래.

 

아무도 우리를 몰라.

아무도 우리를 알려고 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의 삶이 당연하지 않은 거라고 말해주지 않아. 이건 오로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인 거야."

'엄마를 절에 버리러' 中

 

- 엄마를 절에 버리러 

덜컥 임신이 되어 결혼한 엄마는 딸을 낳자마자 난관결찰술을 받았다. 딸은 십대 시절 반 친구들에게 콘돔을 팔았다. 그리고 딸을 대학에 보내줄 돈은 없다는 아버지에게 대항하여 그 돈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결혼보다 아파트를 원한 딸은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쓰러졌다. 모든 게 이그러지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많이 아프면, 도망가.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멀리 도망가.

어쩌려고? 혼자 죽으려고?

몰라. 일단 너부터 살리고 나서 생각해 볼 거야."

'엄마를 절에 버리러' - 엄마와 딸

 

 


 

 

-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엄마와 딸은 작은 다가구 주택 1층으로 이사했다. 딸은 퇴근한 후에도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써서 사이트에 올렸다. 정식으로 작품 계약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낮은 학력이 콤플렉스였던 엄마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히 배웠다. 엄마는 자신감만 부족했다. 그런 엄마가 소설을 썼다며 보여주었다. 암 늑대로 변하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였다.

 

"은빛 털을 휘날리는 암 늑대로 변한 엄마를 상상했다.

그 등에 올라타 털을 꼭 쥐고 있는 어린 나의 모습도….

엄마가 달릴 때마다 나는 위아래로 들썩이고,

엄마의 털을 더욱 세게 거머쥔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함께 가려고 바람을 가르며

우리는 함께 달린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中

 

 


 

 

-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사위가 코로나 확진이 됐다. 엄마와 딸은 집을 나와 싼 모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딸은 엄마를 정신장애인으로 등록하려고 한다. 지금은 같이 살지만, 이제 엄마가 분가하면 그 집의 월세와 생활비, 각종 보험료 등을 계속 책임져야 했기에. 하지만 엄마는 충분히 아프지 않아 정신장애인이 될 수 없었다.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낮 동안 모텔 방에 혼자 있는 동안 엄마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을지 궁금해진 딸은 물었다. 엄마는 그냥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 속 벌레로 변한 남자가 꼭 자기 같다고 했다.

 

"사람이 벌레처럼 산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야.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이유가 있는 거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엄마 김월희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초라한 길이어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딸 서한지

 

 

 

딸에게 부담이 되기 싫은 엄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하나 녹록지 않고 딸은 엄마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고 응원한다. 엄마를 만류하지는 못하는 경제적 유대관계의 딸이 느끼는 씁쓸함과 텁텁함을 뛰어넘는 모녀의 사랑과 연민이 녹아든 결말이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퍽퍽한 우리네 삶이 현실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라 문장이 감정의 찌꺼기까지 다 긁어 토해내다가도 다소 엉뚱하고 귀여운 반전 요소들이 튀어나와 피식 웃게 만든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딸에게 부담주기 싫어 절에 들어가겠다는 엄마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동행하는 딸. 그리고 딸의 배낭에는 불꽃놀이 폭죽 세트가 가득하다. 피융! 파앙! 피시시이익.

소설을 쓰는 딸을 보면서 자신만의 로맨스 소설을 쓰는 엄마, 그런데 암 늑대로 변하는 여인과 그가 마음에 두는 남성은 여자로 변한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소설이지만, 딸은 계속 써보라고 응원하고 엄마는 행복한 결말을 써냈다. 그리고 딸은 영원히 함께 하는 둘을 상상한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밝히지 못하는 두 모녀가 쓰는 소설을 많은 이들이 읽고 행복했으면 빌게 된다.

 

짧고 굵게 주제를 전달하는 단편소설 추천

트리플 17. 『엄마를 절에 버리러』

이서수 소설 - 자음과 모음

 

 

『엄마를 절에 버리러』를 읽으면서 청년들이 떠올랐다.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시작부터 많은 부담을 짊어진 이 시대의 청년들의 모습이지 않나 싶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지극히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흡입력 있게 풀어낸 『엄마를 절에 버리러』, 20대 청춘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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