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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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복복서가


 


마지막 장을 덮고 시간이 한참 흘렀건만 전율이 멈추지 않는다.

책 표지에 적힌 질문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어지럽히고 있다.

이언 매큐언 작가가 그려낸 이상한 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문이, 열쇠가 보이지 않는다. 멍한 기분이다.

 

 

"사랑은 질병인가, 신성한 열정인가?

이성과 과학은 신뢰할 만한가?

믿음은 망상인가, 아니 망상이 믿음인가?"

 

 

소설은 돌풍에 휩쓸린 헬륨 기구를 발견하고 달려가는 이들로 시작한다.

바로 조 로즈, 제드 패리, 조지프 레이시, 토비 그린, 존 로건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주저 없이 달려간 사람들은 기구에 매인 수많은 밧줄을 잡았다.
 

 

기구 바구니 속에 있는 열 살가량의 사내아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달려갔지만,

갑자기 모여 한 팀이 된 그들에게는 리더가 되어 이끄는 이가 없었다.

서로 고함만 지르다 강렬한 바람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냐, 나냐' 하는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도덕성의 딜레마에 직면한

그들은 결국 선택하였다.

누군가 밧줄을 놓았고, 뒤따라 하나둘 놓았다.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구니 속 아이는 무사히 착륙했다.

오직 마지막까지 밧줄을 놓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 점이 된

존 로건만 추락한 것이다.

이타적이었던 로건의 추락을 기점으로 삶을 지탱하던 단단한 바닥이,

사랑이, 관계가 허물어져가게 된다.

로건에게 일어난 사고를 지켜보면서 조가 보여준 행동은

그가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이 참극을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구와 바구니는 서쪽으로 둥둥 떠가고 있었고,

로건의 모습이 작아질수록 공포감은 더 커졌다.

너무 무서운 마음에 갑자기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고,

곡예나 농담, 만화같이 느껴져서 두려움으로 뒤범벅된

웃음이 내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다."

 

 

<하나> 장에서 서술된 비극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작가는 조 로즈와 클래리사 멜런 그리고 제드 패리가 얽히고설킨

이례적인 사랑 이야기로 인도한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망상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패리의 행동에

행복하고 충만한 생활을 누리던 연인 조와 클래리사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까?"

 

 

소설에는 다양한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양한 사랑의 형태로 그려진다.

대부분 존 로건의 추락사로 상처 입고 고통받고 슬픔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제드 패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에게 보여주는 모든 행위가 기이하고 공감되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부록까지 읽어도 사실은 사실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겉돌아

진실을 마주 한다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지독하게도 무서운 진실이었다.

 

그래서 큰 줄기인 조-패리 이야기 외에

존 로건의 부인인 진 로건의 이야기가

다른 줄기로 뻗어나가서 좋았다.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에 진부함을 더하더니 또다시 비틀었다.

이러니 이언 매큐언 작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개인의 드라마에서는 다양성을 볼 수 있었다."

 


 

 

소설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문체만으로도 너무나 매혹적인 소설이다.

문장이 놀라워 글을 음미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리고 조 로즈는 과학 칼럼니스트,

클래리사 멜런은 국문학과 교수로,

소설 속 심리 묘사, 대화 곳곳에서 지적 향유가 넘쳐흘렀다.

 

 

"그는 기나긴 집착의 겨울을 날 땔감용으로 모든 것을,

내 모든 몸짓과 말을 모으고 쌓고 비축하고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영국 정신의학 리뷰> 중 하나의 사례를 몸통으로

이토록 생생하게 숨 막히는 소설을 써냈다니……

흡입력 있게 독자를 이끄는 서스펜스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또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았던 표현들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면서

작가의 의도를 파헤쳐 가는 호기로운 도전으로 이어져 짜릿한 기분을 선사하였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가치를 논리와 이성에 두느냐, 감정에 두느냐에 따른 갈등과 차이를

밀도있게 그려내면서 풍성한 심도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정말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어 무거운 책, <견딜 수 없는 사랑>이다.

 

"여기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우린 아직도 불행하잖아."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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