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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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나의 입맛에 딱 맞는, 더 이상 어떤 것을 첨가할 필요 없이 적당한 소설, 바로  <미확인 홀> 이었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밝고 희망찬 게 아니라 '맛나다'라는 표현이 맞나? 싶었지만 정말 맛나게 읽었다. 살맛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상실과 결핍, 결여로 내면에 빈 공간, 공동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그들의 연결점이 공동이든, 오지랖이든, 장치이든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고 생을 이어가는 하루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과 위로로 다가온다.

 

 

미확인 홀/ 김유원/ 한겨레출판



'미확인 홀', 소설 속에서는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기묘한 구멍을 발견한 후, 제일 친한 친구가 감쪽같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 후 마음에 구멍을 뚫린 희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희영은 친구의 실종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사는 내내 괴로워한다.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고향의 저수지에서 있던 블랙홀을 기어이 찾아냈고,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던, 고민이 있던 필희에게 기어코 보여주었다. 그래서 괴로웠던 필희가 블랙홀로 사라졌다고 믿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동네 병원 의사 남편과 아들, 딸 잘 키워낸 순탄한 인생일지 몰라도 희영은 텅 비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피폐해 보이는 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도움을 주고자 한다. 희영은 사는 게 슬퍼서 남의 일에 관심을 둔다고 했다. 필시 필희에 대한 죄책감, 자책이 이유일 것이다.

 

<작가의 말>


 


 

 

큰 위기나 고난, 상처 앞에서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단단하게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치관이 흔들리고 무너진 현실 앞에서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뚝이처럼 바로 일어설 수는 없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시간과 사람.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답이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이지만 깊이 받아들이게 된 답이다. 희영이가 미정에게, 혜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처형이 제부 정식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순옥이 이든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박음질할 힘을 길러주고 싶었던 것이라 믿는다.

 


 

 

소설 속 인물 중 희영의 남편인 '찬영'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자신의 결핍과 상실을 인식하고 살아가는데, 찬영은 그렇지 않아 눈에 띄었다. 우울증을 앓았던 어머니와는 반대인 밝은 희영에게 반해 결혼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었지만, 변해가는 아내 희영의 모습에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아내'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찬영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와 시점이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찬영이 자신의 문제를 오롯이 마주하게 되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정신과 상담을 거부하던 희영이 상담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 불안이 시작된 블랙홀을 확인했다. 저수지 근처 블랙홀을 다시 찾은 그는 마음속 저수지를 비워냈다.

 

 

 


"내가 살고 싶어 해도 될까?"

"그럼." _ 미확인 홀

"그래서 당신 마음은 어때?" _ 죽은 자

"매미가 울면 매미를 봐야죠. 매미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요. 저러다가 미쳐서 죽는 거라고요." 매미가 울면

"이든아, 어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래이. 어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래이." 오백 원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위태롭게 사는 이들이 전하는, 진한 삶 이야기에 흠뻑 빠져 위로받았다. 내면의 구멍으로 죽은 자처럼 살아온 이들이 공동을 메우기 위해 살아내는 것만큼 멋진 일이 있으랴.

이제껏 살아온 고향 은수리의 몰랐던 아름다움을 이제서야 보게 된 은정처럼 삶은 계속되고, 의미를 심어줄 것이다, 자신이 보려고 한다면.

 

살다 보면 모든 걸 한순간에 잃는 것 같아도, 살아보면 어떤 걸 완전히 잃기까지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완전히 잃지는 않을 기회 또한 여러 번 있다고.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_ 오백 원

 

한겨레출판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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