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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너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그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일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민을 거두어야 할 순간] 중
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벅차오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2차 성징과 함께 찾아온 한 달에 한 번의 정기적인 생리가 끊기는 대신 자궁벽에 착상한 작은 생명체를 확인한 순간 경이에 사로잡혔다. 환희의 시간이 지나가고 염원과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우리 부부는 "건강하게 태어나렴." 되뇌었다.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생명, 아이들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고 경험하고 헤쳐나가면서 단단해지고 성숙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부모가 되면서 바라는 자녀의 건강은 무엇보다 간절하다. 그렇기에 이번에 하니포터 6기 2월 서평단 활동책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는 먹먹하고 분해되지 않은 덩어리가 목에 걸리는 듯한 답답한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 '언어치료사가 쓴 말 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언어치료 수업을 받은 학생들에 대한 기록이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김지호 지음/ 한겨레출판
김지호 언어치료사는 학생들과 처음 만남부터 마지막 헤어짐까지 성실하게 정리하고 있다. 학생별 맞춤 수업 목표와 방식을 수립하여 정진하면서도 건강한 라포 형성을 우선시하는 자세에 신뢰가 갔다. 언어의 세계에서 '정상'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표현의 방법을 제시하고 소통의 창구를 열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이에게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김지호 언어치료사는 학생별 상태와 수업 목표, 함께 한 시간 속 추억을 공유하면서 수업했던 학생들에게 편지를 전했다. 수업 시간은 제각기 다르지만 아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다. 그들이 자신의 오늘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로 풀어내야 하는 영역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우선, 복지제도와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사각지대 없이 필요한 이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보편적 복지가 답이 되지 않을까. 복지 혜택을 받아도 적정 연령이 되어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는 점도 안타까웠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권리는 더디게 보장되는 듯하다.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인식 부족, 선입견을 들 수 있다. 뉴스에서 접했던 삭발 농성,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 등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겪는 차별과 시선이 언어장애 아동과 가족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장애 아동과 가족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언어치료를 받는 학생을 온전히 돌봐야 한다는 것은 다른 가족들에게 큰 부담일 것이다. 생명과 사랑, 말로 표현하는 좋은 말과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실천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이 이웃과 사회, 국가의 관심으로 점차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음과 마음이 통해 서로를 느끼고 이해하고 감흥 할 수 있다면 오해가 없을 텐데, 우리는 언어로 자신의 감정, 생각, 상황을 전한다. 그래서 '언어'는 큰 힘과 가치를 지닌다. 그 언어가 낯선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적정한 속도로 발맞춰 나아가는, 진솔한 이야기에 눈물짓고 미소 짓고 힘을 얻는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