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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사는 킬러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7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1월
평점 :
The killer = 쉰한 살 = 과부 = 실업자
이 모든 조합을 만족시키는 인물이 나타났다. 작달만한 키에 수천 개의 용수철 같은 컬을 헬멧처럼 뒤집어쓴 아줌마, 바로 심은옥이다.
대체로 나는 울어야 할 때 웃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장편소설/ 네오픽션07/ 자음과모음
'킬러'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날렵한 몸에 매서운 눈초리 그리고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지는 인물이 그려진다. 그런데 <심여사는 킬러> 소설에서는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오십 대 아주머니가 킬러가 된다. 생활밀착형 킬러 '심여사'를 필두로 다양한 인물들의 속 사정과 의뢰가 펼쳐진다.
흥신소를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은 심여사네 가족과 흥신소 직원과 의뢰 관계인이다. 경쟁관계인 스마일 흥신소와 해피 흥신소 관련 인물들의 과거부터 차근차근 풀어내면서 현재를 조명하는 구조는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기구하고 굴곡진 인생사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인생이 허망하고 가여우면서도 '참 열심히 사는구나' 싶어 숙연해진다. 끔찍하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욕망이 밑바닥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다.
#옴니버스 소설로, 인물별로 시선이 이동하니 같은 사건도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서 더 흥미롭다.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엄마 심은옥 - 아들 김진섭 시점과 스마일 흥신소 사장 박태상 - 해피 흥신소 사장 나한철 시점이다. 갈등의 축을 이루는 네 인물들이라 자주 등장하니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심은옥 여사네 가족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가족애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심은옥 여사의 모성애와 주변을 살피는 온정이 그랬다. 우리네 어머니 같지만 막상은 쉽게 만날 수 없어 더 특별한 인물이었다. 작가의 풍부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오십 대 아주머니 킬러 '심은옥'은 주위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매력 넘치는 인물이다. 수더분한 그녀가 가진 유일한 정육점 경력은 킬러로 이끌었지만, 모든 일들을 순리대로 풀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원칙을 지키면서 자신이 정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나이의 뚝심은 멋있었다. 정통파 킬러와 건달,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존중했다. 어쩌면 서로를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이'라고 생각했기에 최대한의 마찰을 줄이면서 지내온 그들 사이를 틀어지게 만든 요인이 바로 '심은옥'이었다.
핵심 인물인 박태상, 나한철의 서사도 기구하고 울컥하게 만들지만, 여타 인물들의 서사는 밑바닥 인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었다. 최준기, 이옥순, 이순영, 홍미숙 등 한 사람 한 사람씩 들여다보는 시간이 당혹스럽고 힘겨웠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끝과 끝은 닿는구나' 생각하였다. 울분, 두려움, 슬픔을 느끼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목적은 너무나 단순했다. 그리움, 사랑이었다. 찡하면서도 무섭고 애잔하면서도 두려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렸다.
킬러인데 정의, 의리, 심판을 말한다. 아무나 죽이지 않는다. '죽을 만한 이를 죽이는 해결사'로 공감을 유도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무심한 듯 살인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를 감당해 내야 하는 이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소설은 어느 순간에 큰 결정을 내린다. 하루에 두 번 샤워를 하는 진섭, 욕실에 한번 들어가면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진섭을 보면서 심은옥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 챙그랑~ 쇳소리가 울린다.
죽이고 죽는 피 튀기는 현장인데도 소소하고 평범한 행복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어색함 없이 떠받치고 있다. 강지영 작가 특유의 독특한 인물 설정이 이를 가능케한다. 소재는 현실성이 떨어지는데 인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처럼 친근하다. 푸근하고 정겹고 곁을 내어주고 싶은 다정함이 있다. 그리고 백사장의 경우처럼 통쾌한 한방도 있다. 비뚤어진 심보는 바로잡고, 맛있는 음식을 챙기고 안부를 물어보며 주위를 챙기는 기묘한 조합에 웃다 울었다 서늘해졌다 반응하느라 읽는 독자가 바쁘다.
심은옥은 킬러가 되어 맡은 첫 의뢰를 수행하며 한 말이다.
우리 모두 인간답게 삽시다!
우리 모두 진실되게 삽시다!
우리 모두 성실하게 삽시다!
심은옥 여사의 칼질은 오늘도 계속된다. 떳떳한 칼질로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참 좋다. 서늘하고 심장이 쫄깃해지지만 인간미 넘치는 <심여사는 킬러> 덕분에 딴 세상 구경 실컷 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오늘도 인간답게, 아름답게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의 치트키는 '이성란'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뭐지?' 싶은 캐릭터지만 그녀 덕분에 상황이 완료되었다. 심은옥 여사와는 또 다른 중년 여자 캐릭터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넘쳐흐르는 허당 반전 매력이 돋보인다. 그녀 또한 행복해져서 좋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