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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평점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성은 정하와 그만의 완전무결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연정하' 그녀만을 위해 치밀하고도 차가운 계획을 세운 그는 '사랑'만을 쫓는 뜨거운 남자였다. 드디어 그녀가 그를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배니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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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 김도윤 장편소설/ 팩토리나인
테아트럼 문디 theatrum mundi
이 세계는 신에 의해 연출된 무대이고 인간은 그곳에서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간 스스로가 깨닫고 있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d/k/dkdtlksu/IMG_output_2492932374.jpg)
주인공 '정하'는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편 오원우와의 결혼 생활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누르고 맡은 역에 충실한 그녀를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했다.
부조리와 비상식으로 점철된 그녀의 서사는 가슴을 저리게 하다못해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향해 차별과 폭력을 행하는 이들이 남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 힘겹게 만들었다. 내향적이면서도 영특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었다. 유일한 편인 엄마를 지키기 위해, 유약한 어른인 엄마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취한 태도가 삶의 모습을 굳혀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평범'한 행복을 원한 것뿐인데…… 이토록 어긋날 수 있는 건지 가슴 아렸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끝끝내 사라지기까지 한, 이기적인 남편 오원우! 정하의 시선을 따라 그를 알아갈수록 끔찍했다. 무슨 자격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걸까. 도대체 왜?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비겁한 인간으로, 정하와 두 아이 하원이와 상원이를 무참히 버렸다. 주어진 상황에서 매번 최선을 다하는 정하는 하원이와 상원이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사랑의 온기가 바짝 말라 바삭거리는 그녀의 영혼을 감싸 안아 주었다.
또 다른 주인공 '우성'은 자신의 운명을 계획하고 개척하는 인물이다. 설사 신이 준 역할이 자신과 맞지 않더라도 인내하며 천천히 원하는 결말로 이끄는 강단 있고 의지가 굳다. 그런 그의 시선이 머무는 끝에 '정하'가 있다.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삶이라는 공통분모가 그녀를 눈여겨보게 했을까.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었어."
_ 우성의 의지 p.355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정하의 남편 실종, 우성의 아내 사망. 너무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소설 속 무성한 소문처럼 내 마음에도 혹시? 하는 촉이 발동하였다.
우성과 정하 사이에 묘한 기류가 진하게 풍겨져 나왔지만, 정하가 그어놓은 선은 진했다. 우성과 정하가 하나가 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풀어졌던 긴장이 한순간 극대화되면서 소설의 분위기가 변하는 강약 조절이 소설 《배니시드》가 보여준 스릴러 감각의 절정이었다.
"아저씨는 나에겐 구세주였어.
그 먹구름이 잔뜩 낀 집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 "
_ 하원이가 드디어 토해낸 진심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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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 피맺힌 절규로 각성한 정하는 이제 달라질 것이다. 표현하기 시작한 하원 덕분에, 혼자 껴안고 버텼던 자신과는 다르게 말하기 시작한 딸 덕분에 정하는 현재를 살기 시작한다. 알지 못했지만 느꼈던 우성의 보살핌이 자신을 살게 했다. 완벽한 가정을 이룬 지금을 선택한 정하는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소설 배니시드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끝난다.
두 가정이 한 가정으로 변하는 시간 속에서 간절히 바랬다, 정하와 우성의 안온한 일상을. 정하가 진실을 다 알게 되더라도 깨지지 않는, 강한 유대와 신뢰가 다져지기를.
"우리는 서로에게만 예외가 적용되는 사람들이었다.
우성 씨라면,
이미 그런 곳을 마련해 두었을 것임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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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의 아이들과 우성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어린 나이라 염려에 두지 않았건만, 이토록 민감하고 예민할 수 있구나 싶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기민함을 예상하지 못하는 우를 자주 범한다.
이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어린 시절이 암울하다. 정하도, 우성도, 정하의 아이들인 하원과 상원도, 우성의 아이들인 준혁과 지선까지. 부모에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어른이 된 그들이 소설 마지막에 대부분 행복해 보여, 행복하고자 앞으로 나아가서 가슴이 저렸다.
사랑, 결혼, 가정, 가족, 부모, 자녀. '테아트럼 문디' 과연 우리 인간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일 뿐일까? 정하와 우성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한다.
"엄마, 이제 좀 잊으라고요. 난 이제 겨우 행복해졌어.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좀 행복해지라고!"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